"한편으로는 홀가분한데, 앞으로 어떡할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저 다 잘되리라 믿고 싶어요."
23일 포항시 남구의 한 중학교에서 수능시험을 치른 채소연(가명) 양 가족은 이재민이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의 한 빌라에서 거주하다 지난 15일 지진 이후 쫓기듯 흥해공고로 피신했다. 한참 예민한 시기에, 그것도 여고생의 몸으로 집단 보호소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 베스트웨스턴호텔의 도움으로 채 양은 17일부터 호텔에서 지내며 시험공부를 이어갔다. 다른 이재민 친구들에 비해 무척 좋은 조건이었지만 채 양은 저녁마다 들뛰는 가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복도를 오가는 발걸음이나 자동차 소리를 들으면 마치 지진이 다시 오는 것처럼 몇 번이고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럴 때면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잠들기 직전 공부했던 내용을 정리하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부모님은 걱정하지 말라시지만 그게 또 마음대로 되나요. 하루하루 수능 날짜는 다가오는데 나만 피해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억울했어요."
예비소집일인 22일, 철없는 친구들은 "호텔 생활이라니 부럽다"며 속 모를 소리를 한다. 물론 농담 삼아 던지는 말인 줄은 알지만 왠지 서운했다. 한마디 쏘아붙이려 했지만, 다른 친구가 살며시 손을 쥐며 위로를 건넨다. 농담을 던진 친구도 "함께 힘내자"며 파이팅을 외쳤다. 마음을 진정하고 들어보니 친구들도 지진에 놀란 가슴을 아직 달래지 못한 듯했다.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며 힘이 난다.
"주위 모든 친구들이 지진 걱정을 하더라고요. 나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피해를 보고 있구나. 나만 억울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날 저녁 채 양은 부모님을 불러 함께 호텔에서 지냈다. 그동안 딸의 공부에 방해될까 봐 여전히 보호시설에서 지내며 전화로만 안부를 물어오던 부모님이었다. 오랜만에 부모님의 품 안에서 잠들며 채 양은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그렇게 맞은 수능 당일. 아버지의 차를 타고 고사장을 찾은 채 양은 후배들의 응원을 받으며 교정에 들어섰다. 사정을 아는 후배들은 더욱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처럼 시험 동안에는 지진이 느껴지지 않았다. 공부했던 것을 모두 풀어낸 듯하다. 마지막 채점지에 마킹을 하며 채 양은 그동안 응어리졌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듯했다.
"지금까지 모든 수험생이 그랬겠지만, 저와 제 친구들은 특히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원래 소방관이나 응급구조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번 지진을 겪고 더 확고해졌어요. 더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의 저희 가족처럼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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