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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불혹의 노무자 '66년만에 귀향'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이학기 대령이 유가족(아들 김학모 씨)에게 유품과 위로패 등이 담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이학기 대령이 유가족(아들 김학모 씨)에게 유품과 위로패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전달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6'25전쟁 당시 40세의 나이인데도 비군인 노무자 신분으로 참전했다가 숨진 고 김아귀 씨의 유해가 66년 만에 고향 상주에 있는 유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김 씨는 2000년부터 시작한 6'25 전사자 유해발굴작업에서 최초로 신원이 확인된 비군인 노무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3일 1951년 10월 노무사단 5009부대(103사단 109연대) 소속으로 강원도 양구군 수리봉 940고지 일명 '피의 능선전투'에 참전했다 전사한 김 씨의 아들 김학모(78) 씨의 상주시 사벌면 자택을 찾아가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했다.

국방부는 김 씨의 가족에게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 수습 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함께 발굴된 인식표와 도장, 플라스틱 숟가락 등 유품을 전달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2010년 10월과 2012년 10월 수리봉 일대에서 김 씨의 유해를 두 차례에 걸쳐 발굴했다. 유해에서 채취한 유전자 시료는 김 씨의 아들 학모 씨 등 두 아들과 일치했다.

1911년 경북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태어난 김아귀 씨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5월 마흔의 나이로 대구 노무단 양성소를 거쳐 전투에 참가했다.

유엔군은 여러 형태의 민간인 노무자를 흡수 '한국노무단'을 창설했으며, 그들의 임무는 탄약, 연료, 식량 등 보급품 운반과 부상자 후송, 진지공사, 도로와 교량 보수 등이었다.

국방부는 "6'25전쟁 때 운용된 노무자는 1만3천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 중 8천794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돼 군인들보다 희생비율이 더 높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씨의 아들 학모 씨는 "전쟁 이후 아버지 없이 가족들이 어렵게 살았다"며 "아버지의 전사확인증을 받기 위해 육군본부, 대구지방병무청 등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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