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힘든 일상 늑대, 놀고 먹는 생귀…당신은 어느 쪽 선택?

늑대와 오리와 생쥐/ 존 클라센 그림'맥 바넷 글/홍연미 옮김

훌륭한 그림과 은유가 가득 담긴 이야기책이다. 책은 '사용연령'을 '4세 이상'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4세 이상'이라면 모름지기 30세도 40세도 50세도 포함된다. 4세는 그 나이에 맞게, 50대는 50대의 감성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독자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무궁무진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셈이다. 책에 실린 '그림'에 주목하면 상상의 세계는 더욱 넓고 생생해질 듯하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단순하기에 독자의 상상 세계는 오히려 넓어진다.

◆오리와 생쥐를 삼킨 늑대의 고된 일상

어느 날 아침, 생쥐 한 마리가 늑대 한 마리를 만났다.(참고로 책의 그림에서, 늑대와 마주친 생쥐는 전혀 두려운 표정이 아니다. 이는 앞으로 생쥐의 팔자가 늘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늑대는 생쥐를 단숨에 꿀꺽 삼켜 버렸다.(꼭꼭 씹어 먹었어야 했는데….)

"아우우! 이럴 수가! 늑대 배 속에 갇히고 말았어. 이대로 꼼짝없이 죽고 말 거야." 생쥐가 중얼거렸다.

"좀 조용히 해! 막 자려던 참인데 잘 수가 없잖아." 늑대 배 속에는 생쥐보다 먼저 들어온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 누가 있나요?" 생쥐가 화들짝 놀라 찍찍거렸다. 그때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안쪽에 침대가 있고, 그 위에 오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그렇게 오리와 생쥐는 늑대의 배 속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둘은 함께 식사를 한다. 요리는 훌륭했다. 생쥐가 물었다.

"잼은 어디서 났어요? 식탁보는요?" 오리는 빵을 우물거리며 대답한다.

"늑대 배 속에서 뭘 찾을 수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집에 있는 거랑 다를 게 없다니까."

"여기서 사는 거예요?"

"그럼, 아주 잘 살고 있지."

"밖이 그립지 않으세요?"

"전혀! 밖에 있을 때는 늑대한테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매일매일을 보냈어. 하지만 이 안에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는 걸."

생쥐와 오리는 신나게 춤을 추었다. 배 속에서 한바탕 난리가 나자 늑대는 몹시 배가 아팠다.

"아우우! 내가 뭘 잘못 먹었나 봐." 늑대가 중얼거리자, 배 속에서 오리가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아픈 배 고치는 법을 알아요."

"그래?"

"그럼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비법인데 틀림없이 배가 싹 나을 거예요. 좋은 치즈 한 덩어리를 삼켜요. 포도주 한 병도요! 아, 양초 몇 개도 잊지 말아요."

그날 밤, 오리와 생쥐는 파티를 열었다. 둘은 건배를 외쳤다.

"늑대의 건강을 위하여!"(당신, 요즘 너무 피로해 보여서 보약 한 첩 지었어요,라고 읽어도 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사냥꾼이 나타나고, 늑대가 위기에 처하자 배 속에 있던 오리와 생쥐가 합세하여 사냥꾼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사냥꾼이 나타나자마자 오리와 생쥐가 늑대를 돕는 것은 아니다. 사냥꾼이 나타났을 때, 오리는 "달려요! 어서요! 우리 목숨이 위험해요!"라고 꽥꽥 소리친다. 그러다가 늑대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배에서 뛰어나와 사냥꾼을 물리친다. 오리와 생쥐가 사냥꾼을 물리치자 늑대는 "고맙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 기꺼이 할게"라며 고개를 숙인다. 그 뒤로도 생쥐와 오리는 늑대 배 속에 살며 늑대가 공급하는 음식과 물품으로 잔치를 이어간다. 늑대는 밤마다 달을 보며 '아우우! 아우우!' 하고 운다.

◆우스개처럼 표현한 세상살이의 지난함

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약육강식 세계에서 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남기' '용기와 팀워크가 선사한 상상 못할 대역전'이라는, 그야말로 일곱 살짜리에게 어울리는 평을 덧붙인다. 그리고는 '문학적 상상과 회화적 묘사로 표현된 늑대의 기막힌 여생'이라는 소개와 함께 '밤마다 아우우! 하고 우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슬픔이 담긴 울음소리일 수도 있고, 자신의 처지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호소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해설이 독자의 마음에 더 와 닿을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이 동화이면서 동화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 어쩌면 '동화'라는 형식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늑대를 평범한 이 땅의 '남편 혹은 아버지'로, 생쥐를 '자식'으로, 오리를 '아내 혹은 어머니'로 대치해 읽을 수도 있겠다. 늑대가 꼭 아버지일 필요는 없다. 학으로 태어났으나 늑대처럼 살아야 하는 여자들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독자의 상상에 따라 늑대와 오리, 생쥐는 여러 가지 모습, 다른 삶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은 늑대를 늑대답게 하는 상징인 동시에 영원히 사냥해야 하는 자의 숙명을 은유한다. 이빨과 발톱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오리와 생쥐를 삼키지 않았을 텐데…. 이 책은 오늘도 사냥감을 좇아 달려야 하는 '늑대들'을 위로하는 동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힘센 늑대'보다 '게으른 오리'가 되는 쪽이 낫다,는 교훈을 주는 동화인지도 모르겠다. 48쪽, 1만2천원.

▷그린이 존 클라센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태어나 셰리든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내 모자 어디 갔을까?'(2011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선정),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2013 칼데콧상'2014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수상)에 이어 2016년 '모자를 보았어'를 출간했다. 그의 작품은 섬세하고 깊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유아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글쓴이 맥 바넷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퍼모나대학을 졸업했다. 지금까지 존 클라센과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2012 보스턴 글로브혼북 상'2013 칼데콧 아너상 수상),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2015 칼데콧 아너상 수상)를 선보였다. 그 외에도 '레오, 나의 유령 친구' '규칙이 있는 집' 등이 있다.

▷옮긴이 홍연미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과 기획 일을 하다가 지금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작은 집 이야기' '도서관에 간 사자'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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