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받은 사랑, 너무 감사해요. 꼭 보답하겠습니다."
24일 오전부터 울릉고 학생들은 숙소를 포항 시내 쪽으로 옮기느라 분주했다. 언제든 배가 뜨면 바로 탈 수 있는 숙소를 고르는 데 골치가 아팠지만, 다행히 베스트웨스턴 포항호텔이 싼값에 방을 내주기로 해 한시름 덜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힘이 넘치는 10대들과 달리 길고 긴 외지생활에 지친 교감과 3명의 교사들은 피곤함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언론과 지방자치단체, 각종 단체 전화와 타향살이에 지친 교감은 전날 오전부터 몸져누웠다. 학생들의 밝은 모습에 교사들은 없던 힘까지 짜내고 있었다.
박영 울릉고 3학년 담임교사는 "내일도 배가 뜨지 않는다고 하고, 모레는 기상이 어떨지 모르겠다. 몸은 힘들지만 아이들의 모습이 밝아 그것으로 만족한다.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학생들 의견이 있어 조율 중이다. 학생들이 이번에 포항에서 받은 사랑을 보답하고 싶다고 의견을 전해왔다"고 했다.
수능시험을 마친 학생들의 표정은 영락없는 10대였다. 전날 수능시험을 마친 울릉고 학생들이 2주간 머물렀던 해병대 청룡회관으로 속속 돌아왔다. 오랫동안 자녀를 보지 못해 걱정했던 부모들이 가장 먼저 학생들을 맞았다. 한 어머니는 딸을 끌어안으며 '그동안 많이 고생했지'라는 말을 대신했다. 딸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머니의 품이 좋은지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장난기 섞인 철부지 10대의 표정으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라는 부모의 질문에 "노래방 가고 싶어" "실컷 놀고 싶어. 아무도 말리지 마"라고 답하기도 했다. 외지생활에 지치기도 했을 텐데 10대의 에너지는 달랐다. 학생들은 '수능'이라는 무거운 짐도 벗었겠다, 울릉도에 가는 배도 늦게 뜨겠다, 당장 내일부터 무엇을 할지 즐거운 상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청룡회관 매점도 이날 매상을 제대로 올렸다. 1층 매점에는 저녁식사 전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을 사먹으려는 학생들로 붐볐다. 여기서 만난 한 학생은 "수능 끝났는데요? 단물도 다 빠졌을 텐데 왜 오셨어요?"라며, 뜬금없는 질문을 기자에게 던졌다. '농담일까, 진담일까?' 질문을 한참 생각했다. 청룡회관에 머물면서 질리도록 기자들을 봤고, 카메라 세례도 받았을 거란 생각에 미안함이 앞섰다. 이 표정을 읽었는지 학생은 "언론에서 제 이름을 하도 많이 써서 유명인사가 됐다"며 조금 전 질문이 농담이었다는 듯 궁금한 게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학생은 "규모 5.4 지진에 많이 놀랐고 여진도 있어 불안하기는 했다. 그래도 여진에 익숙해지다 보니 시험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러는 사이 택시 한 대가 청룡회관 앞에 섰고, 택시에서 내린 학생들을 마중하러 어머니들이 달려갔다. 차가워진 딸의 얼굴을 손으로 비비는 어머니에게서 모정이 느껴졌다. 이 어머니는 딸과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딸이 "포항에서 받은 사랑이 너무 커 내일부터 이재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그냥 쉬어도 된다고 말해줬는데도 한사코 봉사를 가고 싶다고 한다. 너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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