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국종 교수의 선택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도 지나고 이제 완연한 겨울이 된 듯 바람은 차갑고 나뭇잎은 모두 떨어지고 있다. 따뜻한 국물이 좋고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우며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계절이 된 것이다. 지난 금요일 공익근무하는 아들을 데려다 주는 출근길에 시린 손을 잡아달라고 내민 내게 아들이 손을 잡아주며 대뜸 묻는다. "엄마는 이국종 교수를 어떻게 생각해?" "글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한 귀순 과정에 심한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치료한 의사이고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의사라는 것 외에는 관심 가질 겨를이 없어 특별한 정보가 없는데 '이 질문은 무슨 의미로 묻는 것일까' 순간 의아했다.

이틀 동안 인터넷을 통해 이국종 교수와 관련된 많은 기사와 대부분의 동영상을 틈틈이 살펴봤다. 날카로운 외모와 웃음기 없는 표정의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센터 의사로서는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추었으며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따뜻한 인성까지 갖춘 요즘 시대에 만나기 어려운 의사였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왼쪽 눈이 실명에 가까워졌고 돈을 못 내는 환자들을 위해 개인의 빚이 늘어가도 오직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치열한 하루를 사는 그였다. 또한, 우리나라 의료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거침없이 발언하면서 세상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이국종 교수가 의사가 되는 그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몸을 던져 많은 생명을 구하고 이 어려운 길을 알면서도 가는 그를 존경하며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기 전에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신념이 없었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해온 그를 보며 아들이 묻고 싶었던 현실적인 질문엔 지금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B(Birth)와 D(Death) 사이에 C(Choice)가 존재한다고 했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수많은 선택의 시간을 거쳐 뜻하는 바를 이루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상처난 마음을 치유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이국종 교수의 대담한 선택에 존경을 표하며 모처럼 따뜻한 사람을 만난 듯 이 겨울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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