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구 비산동에는 지붕에 천막을 덮은 허름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60대 부모와 30대 아들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앞을 못 본다. 몇 년 전에는 뇌졸중까지 와 병원비만 한 달 50만원 넘게 들어간다.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를 앓아왔다. 가족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불편한 몸으로 식당 주방일에 나서고 있다. 효자인 아들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제빵사로 일하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이들 가족은 겨울이 야속하다. 얼음 같은 방을 데워줄 연탄 구입조차 힘겹다. 하루에 연탄 3장 사용도 아까워 불문을 조금만 열고 지낸다. 아들은 "병든 부모님이 따뜻하게만 지냈으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대구연탄은행은 이들 가정에 사랑의 연탄 300장을 배달해주었다.
#2 비산동교회 뒤 작은 대구연탄연행 창고. 창고 앞에 30대 엄마와 손을 잡고 나온 7살 딸이 길게 늘어진 줄에 서 있다. 엄마는 다운증후군을 앓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딸 손에는 찌그러진 작은 양동이가 들려 있다. 연탄은행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연탄 3장을 받아가기 위해서다. 이들 모녀는 하루 연탄 3장이 난방의 전부다. 연탄을 쌓아놓을 창고도 없다. 4년째 매일 아침에 10분 이상 걸어 나와 연탄을 지급받고 있다. 혹시 하루라도 못 나오면 모녀는 냉방에서 지내야 한다. 모녀는 10여 분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연탄 3장을 지급받았다. 딸은 "엄마, 연탄이다"며 생글생글 웃음꽃을 피웠다. 모녀는 연탄을 담은 양동이를 함께 들고 기쁜 마음으로 조심조심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연탄은 따뜻함을 전해주는 희생의 상징이다. 1960, 70년대만 해도 날씨가 추워지면 연탄 창고에 연탄을 구입해 쌓는 것이 하나의 풍경이 됐다. 요즘은 전기, 기름 난방이 일반화되면서 연탄이 상당수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형편이 어려워 아직도 연탄을 때는 가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에게 연탄은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 난방재다. 연탄은 자신의 몸을 태워 이웃에 온기를 전하고는 쓸모없는 재로 사라진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는 시에서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경고한다. 당신은 그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한없이 불타오른 적이 있었는지 되묻고 있다. 박노택(59'비산동교회 담임목사) 대구연탄은행 대표를 통해 연탄 나눔의 필요성을 살펴봤다.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연탄 배달
차가운 바람이 부는 비산동 골목길.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본부 직원 30여 명이 연탄 배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대구연탄은행이 전개하는 연탄 나눔 운동에 동참했다. 직원들은 연탄은행이 제공한 특수 제작 리어카 7대에 연탄을 가득 싣고 골목길을 누볐다. 리어카 한 대에는 연탄 100장씩 실렸다. 연탄 무게만 무려 400㎏ 정도 된다. 리어카마다 봉사자 4명이 붙어 밀고 끌기를 반복했다. 골목길은 비좁고 비탈졌다. 배달할 가정에 도착했지만 리어카가 들어가기 어려웠다. 봉사자 10여 명이 20m 인간띠를 만들었다.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연탄은 사랑의 파도처럼 보였다. 30여 분만에 100장의 연탄을 창고에 쌓았다. 봉사자들은 얼굴에 묻은 연탄 검정을 바라보면서 웃기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연탄 5천 장 기부약정을 하고 우선 7가구에 1천800장 연탄 배달을 했다. 직원들은 "우리 주변에 연탄을 때는 이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추운 겨울 조금이라도 훈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연탄값 인상? 서민들은 피눈물
대구연탄은행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0.61%인 13만464가구가 연탄을 사용하고 있다. 대구 연탄 사용 가구는 5천689가구로 전국 시 단위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가정용 연탄쿠폰을 받는 가구는 2천200여 가구에 불과하다. 농사용 등 연탄 사용 가구를 제외하더라도 상당수 가정이 정부의 연탄쿠폰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낙후된 서구 비산동'평리동 지역에 연탄 사용 가구가 몰려 있다. 아직도 2천 가구 이상이 연탄을 때고 있다. 단칸방에 살면서 연탄 화구 1개로만 추위를 견디는 세입자도 있다. 집은 있지만 가구원의 경제력이 없어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도 있다. 몸이 아픈 할머니와 손녀가 힘겹게 사는 가정도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연탄값을 또 올릴 계획이어서 서민들의 피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정부는 연탄값 동결을 해오다 2003년 10% 인상을 시작으로 2007년 20%, 2009년 30%, 2016년 14.6% 각각 올렸다. 올해도 16.6%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연탄 업체의 눈치를 보며 연탄값 인상 고시를 미루고 있다. 현재 연탄 한 장 소비자 가격은 600원이다. 올해 연탄값이 오르게 되면 장당 700원 정도 된다. 배달료를 포함할 땐 장당 800원에서 최고 900원이 예상된다. 이럴 경우 연탄 에너지 빈곤층은 연탄 난방비로 월 12만원, 연간 96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한 가정 한 달 연탄 사용량은 120~150장. 한 해 사용량(7개월 정도)은 1천200장 이상 필요하다.
◆"11년간 연탄 100만 장 나눴어요"
대구연탄은행이 연탄 배달을 한 지는 벌써 11년째다. 밥상공동체 연탄 무료 나눔 사업의 하나로 시작했다. 2006년 개장해 첫해 60가구에 1만2천 장 연탄을 나눈 이래 11년간 총 100만 장의 연탄을 나눴다. 올해 대구연탄은행은 10월 27일 개장식을 가졌으며 내년 4월 초까지 연탄 나눔을 한다. 연탄은 570가구에 총 20만 장(1억2천만원)을 나눌 계획이다. 한 가구에 연탄 300장을 배달하고 두 번 연탄을 제공하는 가구도 150가정이다. 대구 전역과 군위, 영천에도 배달 서비스를 한다. 연탄 기증도 답지하고 있다. 개장 보름 만에 150가구 분량인 연탄 4만5천 장을 확보했다. 기증자는 희성전자를 비롯한 기업체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 기증자는 60여 명에 이르고 교회 신자가 상당수 차지하고 있다. 연탄 배달은 토'일요일은 주로 신자들이 봉사하고 평일에는 사회단체나 기업체에서 하고 있다. 대구연탄은행은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연탄보일러 수리, 교체도 해주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해 2015년 10가구, 올해는 20가구에 대해 보일러 수리'교체를 할 예정이다. 박노택 대표는 "해마다 연탄 기증을 해주는 분이 많아 어려운 이웃의 아궁이가 훈훈해졌다"며 "올해도 서로 작은 마음을 보탠다면 연탄 20만 장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탄 기증은 어디에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연탄이 없어 추위에 떠는 소외계층이 많다. 정부에서 이런 가정에 연탄을 지원하고 있지만 절대 부족하다. 기업이나 단체, 개인들의 따스한 손길이 필요하다. 연탄 기증은 정부 공공기관이나 연탄나누기 민간단체에 기증할 수 있다. 연탄 기증자에게는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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