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경기가 얼어붙고 금융 및 보험업계가 몸집을 줄이면서 대구시내 사무용 빌딩 공실률도 높아지고 있다. 건물주는 계약 초기 일정기간 임대료를 면제해주거나 건물 용도변경으로 돌파구를 찾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행정당국이 시장에 탄력성을 부여하고 지역 산업구조 개편에도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월당 주변 '노른자위' 건물도 임대 안 나가
27일 오전 대구 남구 봉덕동 KT사옥. 건물 외벽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붙은 빌딩의 출입구는 출근 시간임에도 한산했다. 연초에 KT 직원들이 북구 고성동 사옥으로 옮겨가면서 5, 6, 11층은 완전히 공실이 되고 4층도 대부분 비어 있는 등 전체 11층 중 30% 정도가 공실이 됐다. 빈 층 화장실마다 '공실에 따른 폐쇄' 표시가 붙어 있었다.
인근 사무실 직원 수가 많이 줄어들자 주변 식당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KT 빌딩 바로 앞에 있는 한식당 업주 김모(42) 씨는 "연초에 직원들 대부분이 이사를 하면서 식당 공실문제가 더욱 심각한 곳은 금융 및 보험사가 몰려 있는 동성로 일대 상권이다. 중앙로역에서 서성네거리 방면 국채보상로를 따라 자리한 보험사 건물마다 임대문의 표시가 눈에 띄었다.
도시철도 1'2호선 환승역을 품는 등 '노른자 땅'이라는 반월당네거리에 있는 9층 건물도 공실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이 건물 관계자는 "1층에 있던 외국계은행이 지난 7월 자리를 비웠고 2~3층에 있던 증권사들도 인근 점포와 합치면서 이전한 지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실이다. 병원이 들어서 있는 4층과 5층도 절반 정도는 비었다"고 전했다.
중앙로역 인근에 있는 흥국생명 빌딩은 지난 5월 기존 7층, 10층에 있던 두 지점과 반월당 인근의 또 다른 지점 등 3곳을 10층에 통합했다. 기존 지점들은 아직 비어 있는 상태다. 또 다른 생명보험사인 현대라이프도 올해 들어 전국 75개 지점을 30개로 축소했다. 대구지역에서도 5개 지점을 없애고 중구 동인동에 사무실 1개만 남겼다.
한 기업용 부동산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2015년까지만 해도 대형 사무용빌딩의 경우 공실률이 7~8% 수준이던 것이 최근에는 10% 초반 수준까지 올라왔다. 주로 금융 및 보험업계에서 사무실을 내놓고 있다"며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임대료 하락세…일정기간 임차료 면제 '렌트프리'도
한국감정원이 제공하는 부동산 통계정보에 따르면 동성로 상권 사무용 빌딩 공실률은 15년 3분기 6.7%에서 16년 4분기 11.6%로 4.9% 포인트(p) 증가했다. 대구지역 전체 공실률도 2014년 1분기 10.1%에서 2016년 4분기 18.9%로 8.8%p 증가했다. 동성로 상권 사무용 빌딩의 1㎡당 평균 임대료는 2016년 1분기 8천230원에서 2017년 3분기 7천690원으로 6.6% 하락했다. 같은 기간 대구시 전체 사무용 빌딩의 평균 임대료도 7천400원에서 7천260원으로 1.9% 하락했다. 건물주들은 나빠진 시장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방안을 짜내고 있다. 우선 '귀한 몸'이 된 임차인을 붙잡기 위해 입주 초 일정기간 동안 임차료를 받지 않는 '렌트프리'가 정착하는 추세다.
한 기업용 부동산 임대차계약 실무자는 "수도권에서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던 '렌트프리'가 지역에서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구에서도 공실률이 올라가면서 렌트프리가 2년쯤 전부터 등장했다. 렌트프리 적용은 대외비로 외부에 알리지 않지만 올해 들어 체결된 대형 오피스빌딩 신규계약의 경우 10건 중 8건 정도가 1~3개월쯤 렌트프리를 적용하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빈 사무공간이 상가나 호텔, 병원 등으로 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봉덕동 kt 사옥 1층 사무실엔 약 925㎡(280평) 규모 대형문구점이 들어섰다. 회색빛 건물 1층 외벽은 노란색으로 새롭게 단장했고 출입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중구 수동에 있는 대신증권 빌딩은 지난해 11월 용도변경 및 리모델링 후 병원으로 재탄생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해당 빌딩은 사무용빌딩이었으나 지난해 11월과 지난 10월 두 차례에 걸쳐 용도변경 신청을 했고 현재는 병원 및 약국 등 관련시설이 들어찼다"고 했다.
수성구 중동에 있는 대구파이낸스센터는 호텔로 변신한다. 건물주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지난해 2월 수성구청으로부터 호텔로 용도를 변경하는 인허가를 받았고 연말까지 입주사들이 나가면 리모델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단기 회복 불가능
전문가들은 사무실 수요가 줄어든 것은 그만큼 지역경기 상황이 좋지 않단 뜻이라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오피스 빌딩 공실률 상승은 금융기관이 점포나 사무실을 줄이는 것도 원인일 수 있지만 결국 지역기업들의 체감경기가 그만큼 안 좋다는 의미"라며 "경기가 회복되면 사무용 빌딩 수요도 자연스레 올라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역 경기는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의 지역경제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의 제조업 분야 조사대상 기업 업황 BSI 수치는 전국 평균인 83보다 낮은 64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의 67보다도 3포인트 악화된 수치로 경기가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보다 36%p 높았다는 의미다.
김충화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경제조사팀장은 "각종 경제지표상 대구지역 경기는 굉장히 좋지 않다. 단적으로 '1인당 지역내총생산' 수치가 전국 16개 지자체 중 꼴찌이고 생산 및 소비도 3년째 부진한 상태"라며 "내년 대구경북 SOC 예산이 삭감될 것으로 보이는 등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신성장 사업 육성 등 산업구조 개편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탄력성에 대응, 행정당국 융통성 발휘할 때
전문가들은 시장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융통성을 부여하는 한편 도시계획도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을 보더라도 경기에 따라 오피스가 호텔로 바뀌고 호텔이 주상복합으로 바뀌기도 하는 등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요즘의 트렌드"라며 "예를 들어 오피스 건물에 있던 병원이 주상복합건물로 빠져나가면 오피스 건물을 상가로 변경할 수 있도록 돕는 등 인허가권을 가진 행정당국이 융통성을 발휘해 줄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윤창훈 영진사이버대 교수(부동산학과)는 "도청 이전, 달성군의 성장, 부도심 성숙 등도 도심 오피스 공실률 확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다만 이런 현상에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면 도심에 주거용 오피스텔만 잔뜩 들어서는 등 일시적으로 특정 기능만 집중돼 불편을 초래할 수 있기에 공간적 조화에 대한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도시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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