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뒤지지 않는 지역 의료이지만 심장 이식 수술 분야만큼은 늦은 감이 있다. 국내 최초로 심장 이식 수술이 성공한 게 지난 1992년. 대구경북에서는 지난 4월 박남희(49) 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교수팀이 최초로 성공했으니 꼭 25년이 늦은 셈이다. "심장 이식 수술은 수술 전후의 감염'면역 등 종합적인 관리가 굉장히 중요해요. 또 심장 기능이 떨어지면 콩팥, 폐, 간 등 다른 장기의 상태도 나빠지기 때문에 각 진료과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관련 진료과만 흉부외과, 심장내과, 마취통증의학과, 감염내과, 내분비내과, 호흡기내과 등 6, 7개 과가 필요하죠. 각 과의 역량이 높고 협력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도저히 성공할 수 없어요."
◆이식한 심장 펄떡거릴 때, 그의 가슴도 뛴다
박 교수팀은 올 들어 12명의 환자에게 새로운 심장을 선물했다. 현재 병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며 대기 중인 환자도 3명. 올 연말까지 15명의 심장 이식을 하면 전국 5위권에 오른다. 그는 "심장 이식은 피가 통하지 않는 시간, 즉 허혈 시간을 줄이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뇌사자의 심장을 세우고 적출한 뒤 수혜자에게 이식해 다시 뛰도록 하는 시간이 4시간을 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심장 이식 현장은 생사를 오가는 전쟁터가 된다. 오후 9~10시 공여자의 심장을 적출해 보존용액에 넣은 뒤 헬기로 대구까지 이송한다. 이 과정에 적어도 3시간은 걸린다. 대기 중인 수술팀은 도착 후 1시간 내에 심장을 다시 붙여 뛰도록 해야 한다. 실패는 곧 죽음이다. 수술을 마치면 오전 4~5시. 십수 명의 의료진이 꼬박 밤을 새우는 셈이다.
박 교수는 "처음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식한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걸 보면서 아, 이 사람은 이제 살았다. 새로운 생명이 나타났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었죠." 심장을 제공하는 뇌사자는 연간 400~500명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 수술을 받는 환자는 130~150명에 그친다. 만성 심부전 환자들은 대부분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는 에크모(ECMO'체외막산소화 장치)를 달고 회복을 기 다리다가 세상을 떠난다. "의사들이 그런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심장 이식을 권유해야 생명을 구할 수 있어요."
그는 늘 대기 상태다. 지난 2002년 교수로 임용된 후 14년 동안 거의 매일 밤을 샜다. 한때 SNS 대문글도 '노예 12년', '당직 12년'이었다. "심전도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환자가 보내는 신호가 있어요. 그걸 놓치지 않아야 미리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요. 심장을 살리는 게 좋아 흉부외과에 올 때는 15년 동안 당직을 설 줄 미처 몰랐죠. 하하."
◆후배들에게 더 나은 환경 만들어줄 것
한 해에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는 전국을 통틀어 15명 남짓이다. 그중에서도 심장 수술 전문의사는 절반 정도인 7, 8명에 불과하다. 그가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집어들었다. 지역거점심장수술센터 설치 방안 보고서다. 지역거점심장수술센터는 현재 각 대형병원에 있는 심장 관련 전문의들이 한곳에 모여 진단과 수술, 치료 등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지역거점심장수술센터는 흉부외과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심장수술 전문의의 근무 환경이 개선되고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요."
5년 전부터 추진된 이 계획은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박 교수는 "올해는 긍정적인 신호가 오고 있다"고 했다. 새 정부 들어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현재 수립 중인 심뇌혈관질환 종합계획에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는 정부의 심뇌혈관질환 종합계획 수립에 대한흉부외과학회 대표로 들어가 있다.
박 교수는 올 연말부터 말기 심부전에 이르기 전에 적절한 예방적 치료 시점과 치료 방식을 연구하는 다기관 임상연구도 주도할 예정이다. 전국 6개 의료기관이 동시에 참여하는 이 연구는 3년간 계속된다. 이 밖에 심장 이식이 불가능한 말기 심부전 환자에게 좌심실 보조장치, 이른바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수술도 준비 중이다.
그는 "흉부외과 의사는 앞으로 10년 만 할 것"이라고 했다. "흉부외과 후배들이 나아진 환경에서 근무하며 연구 역량을 높이도록 하고 싶어요. 지역거점심장수술센터를 설립해서 독일 최대 심장센터인 베를린 심장센터에 버금가도록 키우는 게 목표입니다. 7전8기란 말도 있잖아요. 하다 보면 되겠죠."
◇박남희 교수
▷1968년 대구 출생 ▷계명대 의과대 졸업 ▷영남대 의과대 박사 과정 수료 ▷전 서울아산병원 임상강사 ▷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조사위원 ▷대한흉부외과학회 이사 ▷계명대 의과대 의료정보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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