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 전통은 뿌리 깊은 나무
조선시대 과거는 지혜 문제 겨뤄
현재 수능 지식수준 평가에 만족
적폐 혁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지진의 우려 속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무사히 끝났다. 오답 시비도 크지 않고 시험 난이도에 대한 여론도 그리 험하지 않으니 참 다행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열어본 수능 문제가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사회탐구 영역(윤리와 사상) 문제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가상 대화의 스승이 강조한 삶의 태도로 가장 적절한 것은?' '고대 서양 사상가 갑, 을의 입장으로 옳은 것은?' '고대 동양 사상가 갑, 을의 입장으로 옳지 않은 것은?' 동서양 사상가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만화까지 동원된 다양한 지문과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5개의 선택지 중 정답을 골라야 한다. 나름 통합적 사고와 추론 능력을 발휘하도록 출제 위원들이 많은 고민을 한 흔적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평가하는 것은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나?'이다.
비슷한 단계의 시험이지만 너무나 다른 사례가 프랑스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다. 복잡한 지문 없이 짧은 한 문장으로 된 철학시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알기 위해서는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할 권리가 있는 모든 행위들은 정당한가?' '문화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질문 중 하나를 골라 4시간 동안 답을 써야 한다. 철학 과목을 포함해 15과목 모두가 주관식 논술 문제이고, 수험생들은 일주일에 걸쳐 시험을 본다. 철학시험이 있는 날 많은 국민들이 올해의 문제를 기다린다고 한다. 순수한 철학 문제도 있지만 해마다 프랑스와 국제적인 사건과 관련한 문제도 출제된다. 정치가들은 나름의 답을 준비해 발표하기도 하고, 국민들도 다양한 장소에서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한다. 200년 동안 프랑스 국민을 생각하게 한 이 시험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과연 우리 수능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니 더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금의 교육과 평가방식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가?' 전 과목에 걸쳐 쌓은 지식과 한 단어 한 구절에 집중해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답을 고르는 능력을 키우면 이들의 손에서 괜찮은 우리 미래가 만들어질까? 공부시간 기록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 아이들은 다가올 글로벌 경쟁에서도 과연 메달을 딸 수 있을까? 앞으로 이들에게 쏟아질 질문은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나'가 아니라 '당신이 보는 문제는 무엇인가',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일 텐데.
1968년 처음 치러진 대입예비고사로부터 시작된 수능은 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과 평가의 전통은 훨씬 길고도 튼튼한 뿌리를 가졌다. '효율적인 인재 양성의 방법은?'(세종), '예전 좋은 책 중에서 임금이 본받을 내용을 열거하라'(세조), '옳은 정치를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성종) 조선시대 과거시험 문제들이다. 단순한 지식보다는 본인의 생각과 지혜를 묻는 문제들을 통해 바칼로레아 훨씬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학습과 문제해결 역량을 중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OECD는 회원국 32개국을 포함해 세계 52개국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 2015'의 '협력적 문제 해결력' 결과를 지난 11월 21일 발표했다. 다른 사람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어 추가된 이 평가에서 한국은 평균점수 538점을 받아 OECD 회원국 가운데 2~5위, 전체 참여국 중에는 3~7위를 기록했다. 문제해결력 평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협력적 태도를 평가한다. 우리 교과와 교육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을 다시 확인하는 희망적인 결과이다.
"문제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를 인지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능력만 학교에서 길러줘도 우리 아이들이 무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전한 한 교사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는 한 나라 국민의 미래에 대한 생각과 그 준비에 대한 합의의 결과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호의 재도약을 처절하게 고민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교육의 목적과 방식을 재점검하고, 전통을 살려 문제해결 역량을 키우는 진지한 혁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 교육의 적폐를 냉정히 제거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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