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과 포츠담을 잇는 '글리니케(Glienicke) 다리'는 꽤 유명세가 높은 명소다. 1907년 세워진 이 다리는 베를린 장벽 등 소련의 서베를린 봉쇄에 앞서 1952년 폐쇄돼 교량의 역할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1989년 통행이 재개될 때까지 37년간 '건너지 못하는 다리'로 남았다.
그렇다고 누구도 건널 수 없는 다리는 아니었다. 미'소 대립이 격화된 냉전기, 간첩을 맞교환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스파이 다리' 별명이 붙은 이유다. 실제 1962년 비밀정찰 비행 중 격추돼 소련에 억류된 U-2 비행사 프랜시스 파워스와 미국에서 암약한 소련 요원 루돌프 아벨이 이 다리에서 동시에 풀려났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스파이 브리지'의 배경이 바로 이 다리다. 체포된 소련 간첩 아벨의 변호인이자 CIA 부탁으로 스파이 교환 협상에 나섰던 제임스 도너번의 자전적 소설 '다리 위의 낯선 사람들'(1964년)이 영화의 시나리오다.
도너번은 '빨갱이 간첩' 아벨을 사형하라는 여론의 성화에도 판사를 설득해 30년형으로 낮춘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19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레드 콤플렉스'에 성난 군중들은 도너번에게 분풀이를 해댔다. 냉대와 멸시를 넘어 그의 집으로 총알까지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는 '공정한 재판을 통한 미국 헌법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신념에 흔들리지 않았다. 간첩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 체계와 미국의 우월한 도덕성이 소련을 능가하는 방법이라는 도너번의 대사는 영화를 두 번씩 보게 한 힘이었다. 도너번과 아벨의 순수한 인간미와 당당함, 휴머니즘도 양념이다.
적폐 청산의 사회적 기류가 최근 '제2의 도너번'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저께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난 '김관진'임관빈 사건'을 둘러싸고 서울중앙지법 신광렬 판사를 겨냥한 언어폭력과 여당 정치권의 가멸찬 선동 때문이다. 총탄만 없다 뿐이지 '적폐 판사' '재선충 같은 존재' 등 멸시가 넘치고 신상털기가 난무했다.
법원이 김관진 전 장관을 구속했다가 왜 열흘 만에 다시 풀어주었는지 쉬 납득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이것도 법원의 결정이다. 지금은 잘 벼린 칼날로 단죄하는 시대가 아니다. 절차와 합리적인 이유, 논리가 더 중요한 때다. 법이 정치공학에 내몰렸던 묵은 폐습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도너번이 냉전이라는 현대사의 질곡에 맞선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긴 호흡과 밝은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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