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낙태죄 폐지 운운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정부'여당이 낙태죄 폐지를 전제로 공론화를 시도하려 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수십 년간 낙태 문제와 관련해 치열한 논쟁을 벌여 '태아의 생명권이 더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어느 정도 이뤘는데도, 정부가 다시 이를 뒤집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무책임한 논쟁 유발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파문을 촉발시킨 인사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조 수석은 지난 26일 청와대 청원 게시물로 올라온 낙태죄 폐지 문제에 대해 "이제는 태아 대 여성, 전면 금지 대 전면 허용, 이런 식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면서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해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말의 뉘앙스를 보면 낙태죄 폐지를 염두에 두고 공론화'실태조사 등을 하겠다는 뜻인 듯하다. 거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잘못 인용하고는, 교황이 마치 낙태를 용인하고 있다는 식으로 언급한 것도 아주 잘못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덩달아 '공론화위원회 구성이 필요한 사안'이라느니 '당 차원에서 적극 논의하겠다'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으니, 아무리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친 느낌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천주교 등 종교계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가톨릭교회는 낙태 역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유아 살해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태아의 생명이 침해당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천주교로서는 낙태 문제에 관해 물러서거나 양보할 수 없는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낙태죄 폐지는 현재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로, 이르면 내년 초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는 사안이다. 헌재 판결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정부'여당의 힘있는 인사들이 공론화 운운하면서 재판관의 판단에 영향을 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어처구니가 없다.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해소해야 할 집권 세력이 국민 사이에 편을 가르고 분란을 부추긴다면 과연 옳은 일인가. 낙태를 반대한다고 해서 '적폐 세력'으로 몰리지나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세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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