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강진] 세입자 신세 민자학교 "긴급복구 손도 못 대요"

14개 학교 중 6곳 피해 입어, 예산 지원 받아도 보수 못해

포항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학교 중 민간투자사업(BTL) 방식으로 지어진 학교들이 정부가 지원한 긴급복구비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당국과 업체 측은 건물에 들어놓은 재해보험금을 받아 복구하려는 생각이지만, 학교와 학부모 측은 "당장 시급한 복구작업이 복잡한 절차 탓에 늦어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포항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지역 초'중'고'특수학교 130곳 중 BTL 방식 학교는 14곳이다. 이 가운데 지난 15일 포항 지진에 외벽 갈라짐 등 피해를 입은 학교는 양덕초, 송곡초 등 6곳에 달한다.

정부는 포항 지진으로 복구가 시급한 학교를 중심으로 긴급복구비를 내려보냈으며, BTL 방식의 6개 학교도 수천만원씩 예산을 지급받았다. 긴급복구비는 말 그대로 건물에 손상이 심한 부분을 빨리 고쳐 학생들과 교직원이 안전할 수 있도록 써야 하는 돈이다.

하지만 6개 학교 대부분은 학교를 지은 업체와의 계약과 경상북도교육청의 방침 탓에 이 돈을 손도 못 대고 있다. 긴급복구비로 4천만원을 받은 A학교는 "천장이나 화장실 타일 등이 떨어진 부분 등 눈에 보이는 부분을 중심으로만 복구가 이뤄지고 있다. 위험요소가 발견돼도 큰 비용이 드는 것은 방학 때나 돼야 진행될 것 같다"며 "일반 학교는 학교장 재량으로 긴급복구비를 쓸 수 있지만, 우리 학교는 BTL 방식이라 그럴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B학교는 "우리 학교가 직접 증'개축한 건물을 보수하느라 일부 복구비용을 썼을 뿐, 업체가 지은 건물은 마음대로 손을 대지 못한다"고 했다.

이는 학교가 민간업체의 '세입자' 신세여서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학교를 지은 민간업체와 시행사인 도교육청은 BTL 계약을 맺으면서 학교 건물 유지'보수에 대한 부분은 민간업체가 임대차 기간 동안 맡기로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업체는 자체 가입한 재해보험금으로 건물을 보수하려 하고, 예산집행 담당인 도교육청은 보험금 외 산출된 보수비용을 긴급복구비로 대신하려 하고 있다.

배상신 양덕초 학교운영위원장은 "지진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마당에 방학 때나 돼서 위험요인들을 복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만약 학생들이 공부하거나 복도를 다닐 때 지진이 와서 구조물이 떨어지거나 부서져 다치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고 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재해복구비를 못 쓰는 게 아니다. 일단 학교가 처리할 부분을 업체가 대신 처리를 해주고 있고, 피해 금액도 산정하고 있다. 앞으로 보험사가 피해금액을 확정하면 복구작업이 본격적으로 들어갈 것이고, 초과하는 비용은 복구비로 충당할 계획"이라며 "현재 업체들은 기술사를 총동원해 시급한 부분을 복구하고 있고, 지진이 났을 때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것도 BTL 학교였다"고 했다.

한편 BTL 학교는 국가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됐으며, 당시 16개 시'도교육청에서 지은 학교는 100% BTL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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