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수능과 4차 산업혁명

우여곡절 끝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시모집 인원이 많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올해 수능에서도 재수생 강세는 여전했다. 내신도 신경 써야 하고 이런저런 학교 행사 때문에 공부의 맥이 툭툭 끊기는 고 3과 달리 재수생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어 좋은 성적을 거두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매우 단편적이다. 오히려 재수생이 수능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수능이 지닌 태생적 한계 탓이 더 크다.

다소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수능은 '수학능력시험', 즉 장차 대학에 진학해 전공과목을 제대로 배울 만한 능력을 갖췄는지를 진단하는 시험이 아니다. 주어진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풀어낼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능은 '실수와의 싸움'이다. 물론 변별력을 갖추려고 출제하는 고난도 문제도 있다. 그런데 상위권 학생들은 이런 문제도 시간만 넉넉히 주어지면 거의 대부분 풀어낸다. 조금 쉬운 문제는 틀리는 게 이상할 정도다.

'수학의 정석'의 저자로 유명한 홍성대 상산고등학교 이사장이 몇 해 전 한 인터뷰에서 수학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많은 유형의 문제를 익히는 게 우리 수학 교육이에요. 2~3분에 한 문제씩 풀어야 하니까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중요시하지 않고,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반복 연습을 하는 거예요.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 가면서 성장하는 것이 사람인데 반복 연습으로 논리적인 사고가 길러지겠습니까."

수험생들은 수능을 준비하며 '문제 푸는 기계'로 변해간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수학을 예로 들자면, 꽤 고난도 문제의 경우 풀이만 노트 한 페이지 분량이다. 그걸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사칙연산 하나만 실수해도 오답이 나온다. 풀이법을 몰라서 틀리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한 번이라도 다 풀어내면 상당한 실력이다. 수학만 그런 게 아니다. 한 문제를 실수하면 등급이 떨어지고, 지원 가능 대학이 달라진다. 기성세대 시각으로 말하자면 미래가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자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다. 수험생이 60만 명을 헤아리고, 모두 나름대로 뛰어난 성적을 거둬서 좋은 대학에 가려는데 어떻게 변별력을 갖춰서 줄을 세울 것이냐는 물음이다. 수능이 논란의 도마에 오를 때마다 기성세대들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육 기득권층이 수능의 불가피성을 내세우며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필자가 되묻고 싶다. 언제까지 당신들의 알량한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수험생을 볼모로 삼을 것이냐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온다. '인간 같은 기계'가 '기계 같은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이 온다. 창의력과 기발함을 주 무기로 장착하지 않으면 기계들의 약진에 도태되는 것은 인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 오히려 수능을 통해 배출된 '문제 푸는 기계'들이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암울함마저 느낀다.

물론 수능까지만 그럴 뿐 대학에 진학해서 그리고 사회에 진출해서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춘 인재'로 바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 미래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그런 확신을 가지려면 수능, 나아가 대학입시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시험은 아니라고, 여기엔 미래가 없다고 매년 60만 명이 목 놓아 외치는데도 '불수능, 변별력 확보'라며 자화자찬하는 무리들이 여전히 우리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할 지경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수능 점수에 낙담한 수험생들에게 위로차 하는 말이 아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가 한 말이다. 똑똑한 사람이 옳은 말을 하면 제발 좀 새겨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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