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신천의 별똥별

대구 신천에 떨어진 별똥별을 찾아다니던 방송국 기자가 있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옛 문헌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문종 24년(1070년) 1월 대구현에 별이 떨어져 돌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상도지리지'에는 '대구군(大丘郡)의 동쪽 2리쯤 신천 가운데에 삿갓과 같이 생긴 바위(笠巖)가 있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바위는 운석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은 대부분 공기 마찰로 불타 사라진다. 그런데 운석이 떨어져 바위만한 크기의 돌이 남았다면 천문학적으로도 드문 사건이다. 신천에 떨어진 운석의 충격파는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니 정사인 고려사도 이를 기록으로 남긴 것 아닌가.

삿갓바위는 조선시대 서거정 선생이 지은 '대구십경'에도 나오고 일제강점기 때 쓰인 '대구부사'에도 등장한다.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삿갓바위가 존재했다는 추론이 가능한데, 지금 신천 어디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신천에 떨어진 국내 최대급 운석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향토사학자 이정웅 씨의 주장이 흥미롭다. 그는 1910년대 일본인이 만든 대구시가전도를 보면 금호호텔 자리 부근에 '뢰암(瀨岩'하천 가운데 놓여진 바위)'이라는 표현이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원래 경대교 부근 신천에 있던 삿갓바위가 일제시대에 대구 도심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파쇄됐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삿갓바위가 발견된다면 우리나라 천문학 역사가 새로 쓰여지겠지만, 아직까지 종적은 오리무중이다.

운석 말고도 신천에는 진귀한 선사 유적들이 즐비하다. 1억 년 전 대구에는 공룡들이 뛰어다녔고 그 흔적인 발자국 수십 개가 신천 상류에 발견됐으며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도 다수 있다. 신천은 가까이 있어 평범해 보이지만 실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은 하천이다. 게다가 신천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인공 하천으로 약 100년 동안 잘못 인식돼 왔다. 최근 이 역사적 오류가 바로잡혔는데 늦었지만 잘 된 일이다.

대구시는 2025년까지 1천660억원을 들여 '신천 생태문화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콘크리트 덕지덕지 바르는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사업은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고 역사도 배울 수 있는 현장으로서 신천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방향으로 섬세하게 진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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