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유선이 만난 사람] 이민규 한국언론학회장

"MBC 사장 해임 요구 성명 '집권여당 사주설' 근거 없다"

언론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모든 진실을 알 길 없는 대중은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만큼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 과연 우리 언론은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언론이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데에만 집중했을까. 제44대 한국언론학회장으로 취임한 이민규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를 만났다.

-황유선: 정권이 바뀌고 그 어느 때보다도 언론계가 시끄럽다. 지상파 방송사 내의 파업, 해임, 복직 등 현안이 많다. 언론학회 회장으로서 어떤 무게를 느끼는가.

▶이민규: 역사를 보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다. 지금 우리 언론계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뉴스 소비는 많아졌지만 언론사들은 굉장히 힘들어졌다. 그만큼 미디어 환경이 다채널 다변화되고 사람들이 미디어를 불신한다. 혼란의 와중에서 기준을 잡고 이해관계나 정파를 벗어나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바를 제시해줘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황: 언론계의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 언론학자들은 종종 단체 성명을 낸다. 정파적 행동이라는 지적도 받는다. 자칫 학자들의 단체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우려는 없는가.

▶이: 질문이 지당하다. 언론학회에서도 고민하는 것이 1천500명 회원의 소리가 1천500개라는 점이다. 학회 내에는 굉장히 진보적인 분도 있지만 굉장히 보수적인 분도 있다. 스펙트럼의 다양화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학회 소속 467명의 학자가 MBC 사장과 KBS 이사장 등이 물러나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할 때 굉장히 조심을 했다. 일단 초안을 만들어서 회원 전체가 공람했으며 공람을 본 후 성명에 동의한다는 분들의 답변이 모여 467명의 성명서가 됐다. 즉 전체 언론학자라기보다는 467명의 의견이라고 봐야 한다. 일부 회장이나 집행부 등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숙의 과정을 거쳤다.

-황: 해임된 전 MBC 김장겸 사장은 이를 정치적 행동이라고 했다.

▶이: 그는 이들 467명에 대해서 더불어민주당의 사주가 있었다는 주장을 했다. 이 문제를 그냥 지나가면 오해가 있을 수 있고 학자들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기에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학회는 한 개인이나 특정 의견에 좌우되지 않고 상향식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해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정 당이 학문적인 활동에 대해서 법적으로 소송을 거는 경우가 생겼다. 공직선거법위반에 대해 결국 불기소 결정을 받은 SNU 팩트체크센터가 그 대상이었다. 학문적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학교 당국에까지 이러한 소송을 걸기 때문에 학교 당국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는 우회적인 뜻을 내비친다. 특히 내년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이 올바로 서야 민주주의가 올바로 선다. 요즘 워낙 가짜뉴스가 많고 확증적 편향(確證的 偏向, confirmatory bias)과 필터버블(Filter Bubble)에 의해서 자기들만 믿고 싶어 하는 정보를 접하는 시대다. 정확하고 공정하며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고자 정보의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이 정치권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언론학자들이 그저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정확한 정보, 학문과 언론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

-황: 언론학회는 기본적으로 학자들이 중심이 된 학문연구단체다. 학회 활동이 언론 산업 현장 혹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지 않은가.

▶이: 학회는 여러 가지 운영과 자문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포털 측에서는 언론사 진입과 퇴출을 심사하는 제휴평가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포털 내의 언론사 입점과 퇴출을 사외 기관에 신탁한다는 차원에서 시민단체와 전문단체 15개 기관의 각 단체별로 30명의 위원이 와서 심사를 한다. 규칙을 정하고 공정한 심의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언론학회가 많이 관여돼 있다. 사실은 언론 산업 현장에서도 학회에 의지를 많이 한다. 비록 직접 현장에서 행동은 못 하지만 철학과 방향제시를 통해 깊이 연관돼 있다.

최근 교수채용도 실무중심 대학에서는 현업 경험이 많은 분들로 모시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에밀리 벨 교수는 연구하는 교수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에게 실무교육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영국 가디언지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했었다. 우리도 현장과 학문의 긴밀한 유대가 있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육법이 바뀌는 등 교육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황: 학자들은 논문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나 논문만으로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다. 언론 학자들의 소명은 무엇일까.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사회문제를 객관적이고 심층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한 발은 현실에, 다른 한 발은 외부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학문에 두고 객관적인 데이터로 말하며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너무 학문의 세계에만 빠져도 현실을 모르고 너무 현장에서 운동만 하고 있으면 학문의 중요성이 훼손된다. 특히 지금 같은 혼돈과 정보과잉의 시대에는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 고민하는 현장과 학문의 가교 역할이 필요하다.

-황: 언론의 중립과 공정성은 시대를 관통하는 명제다. 그러나 우리 언론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이에 대해 언론학자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가.

▶이: 정파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그 가운데 국민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 만연한 부패와 사회적 비효율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학회에 가면 고민들이 많다. 학자들의 소리가 축적이 돼서 언론이 정치권의 수단이 아닌 하나의 목적이 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면 모든 것이 정상화된다. 이런 것이 언론 윤리다. 요새 젊은 기자들 중에 다른 곳으로부터의 유혹에 흔들림 없이 언론계에 뼈를 묻겠다는 분이 적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기자는 마치 정치권이나 재계로 진출하기 위해 지나가는 자리라는 인식이 좀 팽배한 듯하다. 가령 어느 언론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은 수습과정까지만 마치고 바로 그만둔 후 로스쿨에 가거나 기업으로 가서 '나는 언론인 출신이다'라고 말한다. 기자직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야말로 언론이 중심에 서야 하는데 보조자나 수단 역할만 해서는 이런 문제가 생긴다.

-황: 언론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반면 방송통신위원회를 위시한 규제나 정책은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해결책이 있을까.

▶이: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그것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규제보다는 자각을 통해 자율적으로 변해야 한다. 무조건 안 된다고 혼내기만 하면 또 다른 꼼수가 생긴다. 예전에 인터넷 기사 심의할 때, 취재 없이 기사를 베껴 쓰며 반복 재생산하는 행위인 어뷰징이 많다고 해서 그것만 잡으니까 요령이 생겨서 기사형 광고가 나온다. 기사형 광고에 대한 세칙도 있지만 세칙에 단속되지 않는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봤다. 언론이 스스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그게 안 되면 대중이 이런 언론에 대해서 불매운동을 하고 성명을 낸다든지 해야 할 것이다. 관심을 못 받는 언론사는 존재하지 못한다. 대중이 알아서 언론의 진위를 판명할 수 있는 디지털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와 윤리적인 본질을 익혀야 한다.

-황: 지금 인터넷상에는 직원 두세 명 정도를 두고 언론사로 사업신고를 한 뒤 언론 행세를 하며 저널리즘 본질을 흐리는 곳이 수천 개다. 해결방법이 있을까.

▶이: 어뷰징하고, 보도자료 베끼기를 하고, 국정 브리핑을 단 한 글자도 안 바꾼 채 자사 기자의 이름을 올리는 뻔뻔함이 자행되고 있다. 국가에서 보면 좋을 것이다. 정부의 얘기를 다시 언론사가 확산시켜 주니까. 굉장히 이상한 공생적 관계로 인해서 인터넷 생태계가 혼탁해지고 있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겠다. 미국에는 수백 개의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지가들이 뜻을 모아 '조건 없는 돈을 줄 테니 민주주의를 회복시켜라'며 만든 것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다.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매체다. 뉴욕의 부호들이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장을 스카우트하고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하니까 이 상황을 우려하며 퇴직하는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에게 엄청난 돈을 지원해서 만들었다. 또 정치의 메카인 워싱턴 D.C에 헤드쿼터를 둔 공공청렴센터(CPI, Center for Public Integrity)라는 단체가 있다. 이는 미국의 대선을 분석하고 국회의원들의 부패를 추적하는 정치 전문 매체다. 정치부패가 꼭 미국 내에만 국한된 건 아니니 전 세계로 대상을 넓히자는 차원에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도 구성됐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가 전 세계 부호들의 조세피난처로 이용된 일을 보도한 사례가 유명하다. 또 보스턴대학, UC 버클리, USC 등 지역대학들도 앞장서서 학생들과 탐사보도를 수행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탐사보도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의 힘은 대단하다.

-황: 현실적으로 언론의 공정성 담보를 위해서는 언론사의 재정적인 측면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 언론 산업은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단도직입적으로, 언론사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이: 그런 측면에서 두 가지를 얘기한다. 올바른 언론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제도적 측면과 사회 문화 개인적 측면이 있다. 가만히 지켜보건대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 NPR(National Public Radio), PBS(Public Broadcasting Service) 등 공영방송, 비영리 단체 등의 주 종목이 탐사보도인데 이런 매체들이 성공을 했다.

이유는 우선, 제도적 측면에서 이러한 곳에 기부를 하면 100% 세금환급을 받는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나도 좀 해봤다. 이들은 기부(donation)라고 안 하고 약속(pledge)이라고 부른다. NPR에 100달러를 기부하니 1천달러 가치에 상응하는 혜택이 돌아왔다. 여기에 상업회사들이 쿠폰을 제공하는데 영화쿠폰, 품위 있는 콘서트 쿠폰 등이 온다. 심지어 바하마 여행권도 주니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다. 세금환급이 기본이고 내가 기부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져 주며 내 돈은 다시 돌려준다는 약속이 중요하다. 반면 우리는 어디에 기부를 하면 다른 곳에서 시비를 건다. 정치적인 압박도 오고 세금 추징도 당한다. 하고 싶어도 정권이 바뀌면 어려울까 봐 걱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언론사가 서로 경쟁해서 챙겨야 하는 구조다. 뭔가 음성적으로 광고는 안 받더라도 협찬을 받는다. 기자가 한 명이고 영업직원이 세 명인 인터넷 언론사들이 번듯하게 운영된다. 기형적 구조이지만 말하기 불편한 뜨거운 감자다. 언론의 자유를 들이대면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이런 것은 학회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황: 미래 주역인 젊은이들에게는 올바른 뉴스를 취사선택 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 시급해 보인다.

▶이: 흔히 미디어 교육이라고 하면 주로 신문을 통한 교육만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 ABC방송 자본과 미국 내 가장 큰 스페인계 네트워크 텔레문도가 만든 퓨전이라는 회사는 뉴스를 게임처럼 만든다. 이 회사는 무조건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즐겁게 체험하면서 뉴스를 보도록 유도한다. 우리나라에도 젊은 층의 취향을 사로잡기 위해서 카드뉴스 등 다양한 뉴스포맷이 시도되고 있다. 이렇듯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뉴스를 통해 일단 뉴스에 대한 관심이 고양될 필요가 있다.

-황: 미디어와 행복. 이 두 단어는 조화로울 수 있을까.

▶이: 앞으로는 정말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정보도 제공돼야 한다. 뉴스를 보면 사람이 긴장하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좀 따뜻한 이야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행복한 뉴스도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언론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꼭 의도적인 비판뿐만 아니라 좋은 뉴스, 행복한 뉴스에 대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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