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의 심각한 우려가 한국을 향하고 있다. 유엔아시아태평양에이즈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신규 HIV 감염인 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에서는 매년 그 수가 증가하고 있고 감염인들에 대한 진료 거부 행위 등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별 상황 때문에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였다.
40년 이상 한센인을 치료하는 모든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누르고 있었던 사실은, 한센에 대한 일반의 편견과 차별이 철벽같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센 환자의 발생이 거의 사라진 이유는 우리가 한센병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한센병이 후진국형 질병이기 때문이었다. 고스란히 남아 있던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그 대상이 에이즈로 바뀌기만 하였다.
30년 전 UN이 12월 1일을 '에이즈의 날'로 정하고 에이즈에 대한 치료와 지원뿐만 아니라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자는 선언을 했을 때, 한국이 과연 이 도전을 소화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나로 하여금 에이즈 사업을 시작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소설가 '수전 손택'은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은 질병일 뿐, 질병은 저주가 아니며, 신의 심판도 아니므로 곤혹스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한 개인의 건강 상태와 질병의 경중이 사회적으로 명명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때로는 가정과 사회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차별과 오인으로 특정 집단이 학살당하고 차별받아 왔던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좀 더 깨어 있어야 한다. 나치에 의한 선동으로 수많은 유태인과 소수자들이 학살당했으며,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생명들이 죽임을 당했다. 무지의 시대란 이유가 우리 인간에게 면죄부를 준다 하더라도 더 이상 무지라는 이유는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이 밝히는 사실 규명과 시대상의 변화는 우리에게 의식의 변혁과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면서 인권의 중요성을 바라보게 한다.
언론과 대중매체 속에서 공포와 위험의 대명사로 은유 되어 왔던 에이즈는 이제 많이 바뀌었다. 치료제 복용으로 수개월 후면 감염성이 없어지고 일상생활에서도 전염성이 없으며 관리만 잘하면 일반 수명을 누릴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그 의학적 위상이 변화하였다. 그러나 유엔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는 대한민국을 심의한 후 발표한 최종 권고문에서 HIV감염인이 의료에 차별 없이 접근하고 치료를 받음으로써 건강권을 향유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1907년 벌어진 우리나라 국채보상운동이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우리는 접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는 선각자적 저력을 지금 살려내어 다 같이 질병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며 우리의 역사를 진전시켜야 한다. 후대의 기억 속에 어떠한 역사로 남을 것인가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나가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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