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베이비부머 드레스 코드는 등산복?…『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일본의 인구구성 중 '단카이(團塊) 세대'가 있다.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전후 세대들을 일컫는 말이다. 약 800만 명에 이르는 이들 세대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진학, 취업, 결혼, 주택 문제 등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수요(需要) 활성화로 일본 고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지만 동시에 버블경제를 일으켜 20년 장기 불황을 가져온 '주범'이기도 하다.

비슷한 용어로 한국엔 '베이비부머'(Baby boomer)가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그룹을 말한다.

빠르면 60세를 넘겼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나이다. 직장을 다닌다면 임금피크제 대상이거나 퇴직을 앞둔 세대로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연령이다.

이들은 '참혹한 전쟁'은 겪지 못했지만 대신 '혹독한 경쟁'을 겪어야 했다. 중'고교 때 입학시험에 시달리다 1960, 70년대엔 산업화 시기를 온몸으로 맞았다. 1980년대 민주화와 IMF 외환위기, 대통령 탄핵 등 격동의 한국사 소용돌이 속을 헤쳐 왔다.

이 책은 베이비부머로 태어난 시인 장석주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며 지금까지 잘 버텨온 '동지'들과 나누는 치유의 메시지다. 행간마다 작가 개인의 슬픈 에피소드가 내레이션처럼 흘러간다. 간혹 다른 친구들의 사례를 빌려 전후 세대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1부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에선 저자 개인의 삶을 박정희, 전태일, 배일호 같은 인물과 골목길, 구로공단, 피에로, 떠돌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이들 세대는 유독 '집'에 집착하는데 이는 가난 때문에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가족 수난사가 투영된 것이며, 변두리 골목길에서 가끔씩 회한에 젖어드는 것은 번잡하고 고달픈 이사의 슬픈 기억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박정희 정권의 애국주의 세뇌 교육에 내몰렸지만 민주화의 신념을 굳게 지켰고 IMF 외환위기의 구조조정 속에서 직장은 잃었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잃지 않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신념과 기억이 왜곡되고 비대화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정치 참여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한쪽에서는 박근혜 탄핵을 지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태극기집회의 행렬에 서기도 한다.

2부 '베이비부머의 고백'은 저자의 고교 친구 5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온 가족이 '생존'에만 급급했기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가족의 빚을 대신 갚거나 부친의 '두 집 살림' 같은 복잡한 가계에 속을 끓이기도 했다. 5명의 60년 인생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았던 세대들에게 묘한 공감대를 자극하며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베이비부머 중 매년 100만 명이 퇴직자로 나온다고 한다. 나라를 빈곤에서 구했지만 자신들은 명퇴, 해고, 실직을 겪으며 우울한 노년을 맞고 있다. 울분'고독을 혼자 삼켜야 했기에 이들 세대에 등산이 유행했다. 아웃도어 패션을 6조원 시장으로 키운 것도 이들의 공로다.

이 세대의 숱한 모임에 드레스 코드는 여전히 '등산복'이 주종을 이룬다고 한다. 편하다는 장점 외에 시대의 우울이 옷으로 내화(內化)된 흔적인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베이베부머의 또 하나의 짙은 그늘을 읽어낸다. 등산복 패션은 이들이 감당하는 생의 나날이 여전히 '산'같이 가파르고 힘들다는 무의식적인 암시라고. 219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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