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서 과연 '우연'이 얼마나 있을까. '우연'이라는 단어 속에 '우연'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꼭 있기 마련이다.
어릴 때부터 국어 과목을 좋아했고 잘했다는 단순한 생각에 나는 국문학과에 입학하기를 희망했다.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면접을 봤고, 수능을 쳤다. 듣고 싶은 과목을 수강했고, 열심히 하지 않은 과목은 성적이 낮았고, 열심히 한 과목은 성적이 좋았다. 선배의 추천으로 대학신문사에 들어와 활동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동기, 후배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은 인간관계는 시들해졌고, 열심히 한 인간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4학년이다. 당장 내년 2월이면 설문조사의 '직업'란에 '학생'이라고 체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얻었고, 잃었으며, 빼앗긴 것도 있고, 빼앗은 것도 있다. 참 많은 일과 사람들이 '이유'를 통해서 거쳐 갔다. 그전에 내가 한 행동, 말, 표정, 눈빛, 심지어 차림새, 수면 상태 등 오늘의 내가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오늘의 나도 그래서 이곳에 있다. 만약 내가 어제 잠을 더 잤다거나, 후드티에 청바지가 아니라 블라우스에 카디건을 입고 이 글을 썼다거나, 혹은 귀찮아서 쓰지 않았다거나, 안경을 쓰지 않고 왔다던가 했다면 이런 말투로 글을 쓰는 내가,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누군가가 여기 앉아서,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필연'과 '우연'이 반대의 의미이면서도 교집합을 이루는 것이라면 필연 또한 우연만큼 로맨틱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만약 지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우연을 바랄 필요는 없다. 우연히 상황이 나빠지는 일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태껏 나 스스로 내일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필연히 만들어진 오늘을 사랑해야만 한다.
여태껏 우리가 모래 위에 써온 '우연'이라는 두 글자는, 삶의 아름다움을 '위해' 누군가가 필연히 빚어낸 단어가 아닐까.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필연히, 우연을 좇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래야만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오늘을 나는 감당하기로 했다. 앞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에, 후에 취업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살 만한 가능성을 만든 필연에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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