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국내 정보, 해외 정보

9'11 테러 발생 20개월 전인 2000년 1월 세계 각지에서 암약하고 있던 알 카에다 대원들이 말레이시아에 비밀리에 모였다. 테러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이들 중에는 9'11 테러 당일 납치한 아메리칸 항공 77편으로 미 국방부 건물 펜타곤에 돌진한 집단의 일원인 칼리드 알 하드미르와 나와프 알 하즈미도 있었다. CIA는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알 카에다 비밀회의가 끝나는 시점에 CIA는 알 하드미르의 사진, 여권과 미국 비자 번호 등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확보했다. 그리고 이들이 태국 방콕을 거쳐 미국에 들어와 로스앤젤레스에 잠입한 사실도 파악했다. CIA가 이런 정보를 즉시 국내 수사기관인 연방수사국(FBI)에 알렸다면 9'11 테러는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CIA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목적은 알 하드미르라는 '깃털'의 추적과 감시를 통해 알 카에다란 '몸통'을 잡는 것이었다.

이는 조직 이기주의라기보다는 정보기관이란 CIA의 특성이 빚어낸 '제 팔 제 흔들기'였다. FBI는 사건이 벌어진 후 범인을 체포하고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지만 CIA는 테러와 같은 범죄 음모를 사전에 파악해 예방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정보나 범죄 관련 인물에 대해 매우 다른 접근 태도를 갖게 한다. CIA는 '깃털'을 잡아들이는 것보다 설치게 놓아두는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러나 CIA는 이들을 추적 중에 놓쳐버렸다. 다급해진 CIA는 그런 정보를 9'11 테러를 19일 앞둔 2000년 8월 23일에야 FBI에 알렸다. CIA가 이렇게 미적대는 사이 알 하드미르는 비행학교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하는 등 테러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결국, 9'11 테러는 '해외 정보'와 '국내 정보'의 칸막이 식 운용이 빚어낸 피할 수 없었던 재난이었던 것이다.

국정원이 수집하는 정보의 범위에서 '국내 보안' '대공' '대정부 전복(顚覆)' 등 국내 관련 정보는 제외한다는 내용의 개편안은 9'11 테러를 야기한 미국 정보기관의 실수를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00% 순수한 해외 정보나 국내 정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안보와 직결된 정보는 '해외 부문'과 '국내 부문'이 다층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정보를 '해외'와 '국내'로 구분하겠다는 것 자체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계적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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