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흰 동물은 극히 드물다. 동물의 피부가 흰색을 띠는 것은 백색증(알비노) 질환의 결과물이다. 멜라닌 색소의 결핍으로 생긴 현상인데, 자연계에서 알비노 동물이 살아남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 피부가 희면서도 알비노가 아닌 경우가 있다. 흰 코끼리가 대표적이다. 흰 코끼리는 극히 드문 유형이다. 흰 코끼리라고 불리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적갈색이며 물에 닿으면 밝은 분홍색을 띠는 피부를 갖고 태어난다.
흰 코끼리는 동양권 문화에서 영물(靈物)로 여겨진다. 인도의 마야부인은 6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뒤 석가모니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동남아 불교 국가에서 흰 코끼리는 왕권 수호의 상징적 존재다. 이들 나라에서 흰 코끼리는 매우 '귀하신 몸'인지라,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 태국의 경우 흰 코끼리는 왕실에 의해 특별 관리되는데, 2016년 11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장례식에는 흰 코끼리가 9마리나 등장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옛날 동남아 불교 국가에서 왕은 미운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하사했다. 왕으로부터 받은 흰 코끼리가 폐사라도 하면 이만한 불경죄도 없기에 신하는 전용 수의사를 고용하면서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봐야 했다. 하지만 흰 코끼리의 먹성이 엄청난 데다 사람만큼 오래 살아 웬만한 재력으로 감당키 어려웠다. 왕으로서는 껄끄러운 신하 골탕 먹이기에 흰 코끼리만큼 좋은 수단도 없었다.
이러한 전설 때문에 '흰 코끼리의 역설'이라는 관용어가 나왔다. 영미권에서 '흰 코끼리'라는 말은 버리기 아깝고 그냥 두자니 쓸모없어진 생활용품을 의미한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지만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드는 사회간접자본 등을 비판하는 시사용어로도 쓰인다. 올림픽 등 큰 스포츠 이벤트용으로 지어졌다가 사용 후 내팽개친 시설이 대표적인 흰 코끼리들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수십억~수백억원의 혈세가 투입됐지만 이용객으로부터 외면받고 파리 날리는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최근 영국의 언론사인 '가디언'이 세계 곳곳의 건축물이나 시설 10곳을 골라 흰 코끼리라는 별명을 붙이면서 우리나라의 4대강 사업을 3위에 올렸다. 수질 개선 및 치수용으로 22조원이 들어갔는데도 강의 수질이 되레 악화됐으며 시설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 선정 사유다. 국내에서도 논란 많은 4대강 사업이 바다 건너에서도 조롱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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