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충; 벌레전쟁

"소수의 개념 없는 아줌마들 때문에 맘, 엄마라는 단어를 더럽히는 건 뭔가 아닌 것 같네요. 맘충이란 단어는 어디가 발원지일까요? 또 일베(일간베스트·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인가?"

"아비 노릇은 안 하면서 권위만 세우는 애비충, 술 먹고 들어와서 손찌검을 하는 애비충, 누가 차려주지 않으면 밥 안 먹는 애비충…."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읽은 글이다. 사람이 사람을 벌레(○○충)로 부르며, 이렇게 미워해도 되나? 섬뜩하고 슬프다. 과거에도 '공부벌레' '일벌레' 등의 표현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벌레는 '어떤 일에 열중하는 사람'이란 긍정의 비유다. '○○충'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충'은 특정 대상을 벌레(蟲)로 비하한 표현이다. 나이, 집단, 성별, 직업에 따른 편 가르기다. 차별, 혐오, 모욕이란 '폭력'이 내재된 말이다. 10대는 20대를 '학식충'(학교식당 밥을 먹는 대학생), 20대는 10대를 '급식충'(학교급식을 먹는 중·고교생)으로 서로를 끌어내린다.

'○○충'의 기원은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인 '일베' 회원을 지칭하는 '일베충'으로 추정된다. 언제부턴가 '○○충'은 일상어가 됐다. 온라인 은어(隱語)가 오프라인에서도 활개를 친다. 대상이 확대되고, 강도는 세지고 있다.

'맘충'(몰지각한 엄마), '애비충'(몰지각한 아버지), '한남충'(무능력하고 한심한 한국 남자),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며 잔소리만 늘어놓는 노인), '진지충'(분위기에 맞지 않게 진지한 말만 계속 하는 사람)….

이런 표현은 한 집단을 분열시켜 갈등 구조로 몰기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있는 글이다. "우리가 저런 '분교충'(분교에 다니는 대학생)과 같이 어울려야 하나. 솔직히 자존심 상한다." "정시로 들어온 우리가 수시보다 성적(수능 성적)이 좋다. 장학금은 정시 입학생들에게만 줘야 한다." 이처럼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마저도 '분교충' '수시충'(수시전형 입학생), '지균충'(지역균형전형 입학생), '기균충'(기회균등전형 입학생), '편입충'(편입 학생) 등으로 갈라져 공격한다.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혐오 표현은 사회병리의 반영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생각 없이 벌어지는 악이다. 그 바닥에는 뿌리 깊은 서열주의, 세대·지역·이념·남녀 갈등이 똬리를 틀고 있다. 또한 양극화, 무한경쟁, 취업난으로 비롯된 패배의식, 분노, 원망, 억울함이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혐오는 삶을 황폐화시키고, 공동체를 파멸로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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