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상상으로 지은 글 속에, 황토로 만든 벽돌에 한지로 하늘을 가린 지붕을 가진 '천상의 집'이라는 가상의 주택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지은이는 500년 전 조선 세종 때의 농서(農書)인 '산가요록'에 나오는 벽돌 온실을 참고했다. 옛 벽돌 온실은 흙 벽돌로 지은 남향 집에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지붕을 겸한 창을 냈다. 창에는 한지를 발랐다. 그 벽돌 온실에서 겨울철에도 채소를 재배한 것이다. 글쓴이는 바로 그런 자료에 근거해 우리의 흙으로 빚은 벽돌과 한지로 지붕을 삼은 집을 어떤 주택업자가 상품화해서 외국에까지 수출한다는 내용을 쓴 듯했다.
비록 허구로 쓴 글이었지만 그 근거는 분명했다. 조선 중기 궁중의 어의인 전순의가 남긴 산가요록의 기록과 관련, 실제로 지난 2002년 한국농업학회와 대한건축학회 논문을 통해 '벽돌 온실'의 뛰어난 기능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실제 벽돌 온실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한지로 된 창문을 가진 벽돌 온실은 오늘날의 첨단 온실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기름을 먹인 한지의 투광(透光), 방수(防水), 보온(保溫) 등의 우수성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거듭 확인됐다. 이는 KBS 영상을 통해 2002년 전국에 방영됐고 큰 관심을 끌었다.
한지의 뛰어난 성능과 우수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비록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천년'을 간다는 우리의 종이로서 명성과 역사성은 여전하다. 이는 올 들어 전주 한지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문화재의 복원 재료로 사용된 데서도 알 수 있다. 전주 한지는 또 바티칸 비밀문서고에서 100여 년 만에 발견된, 1904년 고종황제의 교황 비오 10세 즉위 축하 서찰의 복본에 사용됐고 복본은 지난달 바티칸에 전달됐다.
우리네 한지의 명성은 이어졌다. 문경의 경북도 무형문화재인 김삼식 한지장이 만든 문경 한지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문화재 복원용으로 최근 선택되어서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기록 유물 복원과 보수용 종이로 일본 화지와 중국 선지를 썼던 루브르박물관이 문경 한지를 쓰기로 한 까닭은 문경 한지의 우수성을 인정한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제대로 몰랐던 문경한지의 우수함을 나라 밖에서도 인정한 셈이니 경북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종이, 한지의 맥을 잇는 숨은 장인들의 땀과 혼 덕분에 세계인의 종이가 된 한지가 새삼스럽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지난 세월 속의 광고 문구가 절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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