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나라의 보배는 청소년이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약 30여 년 전의 일이다. 문간방 할머니 방에 좀도둑이 들었다. 시골처럼 대문을 열어놓고 사는 변두리에서 있을 법한 작은 일이었다. 우리는 도둑맞은 사실도 모른 채 한참 지난 후 붙들린 좀도둑의 고백으로 알았다. 근무지에 있던 내게 어머니는 도둑의 실체를 소상히 이야기하면서 뭐 잃어버린 것이 더 없는지 캐물었다. 만약 작은 것이라도 나오면 그 도둑에게 다 물을 심산이었다. 그때 전화기를 타고 흐르는 도둑의 모습은 당시 내 또래보다 약간 어린 소녀가 그려졌다. 그런데 어머니는 파출소에 한 번 들렀다가 좀도둑의 얼굴을 보고 안면이 있는지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배가 고팠을까? 엄마가 없을까? 어려운 사람이면 어떻게 도와야 하나? 흉기를 갖고 있으면 어떡하지? 복잡한 심경으로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유행가 가사처럼 '긴 머리 소녀'는 겁에 잔뜩 질린 사슴처럼 떨고 서 있는데 그와 내 눈이 딱 마주쳤다. 빠르게 움직이는 동공에서 도와 달라며 엄청나게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가 잃은 것은 스타킹 몇 켤레와 돈 이 만원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쿡 쿡 찌르면서 나를 먼저 내 보내셨다. 어슴푸레 뒤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혼잣말은 "불쌍해라. 새끼 놔두고 가면 눈물구덩이지…"였다. 그날 이후 애원하는 어린 사슴의 눈동자는 오래도록 내게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요즘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문득 수십 년 전의 그 '긴 머리 소녀'가 떠올랐다. 이혼하는 부부에게는 상담과 조정을 거치면서 그동안의 쌓였던 울분을 털어놓고 묵은 앙금을 삭히며 서로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자녀는 어디에 가서 누구한테 그들의 부모 이야기를 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속 시원하게 말 못하는 아픈 가슴을 꾹꾹 누르면서 상처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 자녀의 아픔을 치유해서 밝고 긍정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고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건전하고 건강한 청소년이 건강한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어야 누릴 수 있는 복지혜택을 아동시기부터 조기에 누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사후약방문의 정책을 만들어낸다. 이제 아동복지에 눈을 돌려서 청소년문제와 범죄 및 사회문제를 미리 방지하고 그들이 올바르게 사회구성원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내년부터 '아동수당'이 신설된다고 한다. 설마 부모에게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아동복지라고 착각하지는 않겠지? 정작 아이가 원하는 것은 빵이 아니라 '사랑'이다. 배만 부르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신, 가치관 확립에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가 일등 국민이 되었을 때 일등 국가가 되는 것이다.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이자 보배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