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니 편과 내 편'

'니'의 복수형 '너거', '내'의 복수형 '우리'. 현 사회에서 이 둘의 간격이 끝 간 데를 모르고 벌어지고 있다. '니'너거'는 적이고, '내'우리'는 동지다. 객관적 증거, 사실, 타협, 인정 등도 매몰될 정도로 진영 논리가 더 앞서고 있다. 남녀노소도 가리지 않는다. 우리 편에 해로운 존재면 다 '니'너거'로 매도된다.

#1 지난 추석 연휴 즈음 경북 김천의 한집안에서 큰삼촌'작은삼촌'아버지가 다 모여서 정치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화를 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버지랑 삼촌들이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하니, 나라가 이 꼬라지 아닙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하면 다 잘 될낍니더." 이 조카는 혼자 한마디 뱉고, 문을 닫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버지와 삼촌들은 뜬금없는 로켓포(?)를 맞고, 어안이 벙벙했다. 집안 불통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2 조용한 버스 안. 한 여고생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큰소리로 따라부른다. 뒤에 있던 할머니들이 '조용히 좀 하자'고 하자, 대뜸 소리를 지르며 '왜 남의 인생에 간섭질이냐'며 달려든다. 보다못해 앞에 앉은 할아버지가 와서 여고생에게 '조용히 해!'라고 하자, "X 같은 할배가 왜 지랄이냐"며 확전됐다. 말릴 사람이 없다. 이 여고생이 내릴 때까지 버스 안 꼴불견은 계속됐다. 이 광경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조차 모르겠다.

#3 대구의 초등학교 한 동창회. 철저하게 패가 갈렸다. 직전 회장 집단과 현 회장 그룹이 남북한이 갈린 듯 서로 비방하고, 으르렁거린다. 동창회는 사과가 두 쪽 나듯 갈라졌다. 지금은 현 회장 그룹만이 매월 모임에 출석한다. 모임 때가 되면, 직전 회장 일파의 흠을 잡는 것으로 안주를 삼는다. 남자들 패가 갈리니, 여자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순수한 취지의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다. 초교 동창회도 흑백논리가 판치니, 세상 흐름이 이런가 싶다.

#4 지난달 20일 충북 세종시에서 열린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제16대 중앙회장 선거. A후보(대구지역 회장)는 상대 후보에게 2표 차이로 아깝게 떨어졌다. A후보 측은 "회칙상 후보 자격 미달, 불법 선거인단 동원 등 불법선거가 극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선거 후 편은 완전히 갈렸다. 현 회장과 이사진이 똘똘 뭉쳤고, A후보는 전국 시'도 회장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A후보 측은 현 회장에 대해 이달 초에 서울 남부지법에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단체도 벌써 서로 적대시하며, 루비콘 강을 건넜다.

위 네 가지 사례는 불과 한 달여 사이에 기자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올해 정치권 최고의 유행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사회 전반에 악성종양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극단적으로 갈린 사회는 '복수의 악순환'이 이어져, 사회 정의와 객관적 사실뿐 아니라 옳고 그름이 개인적 취향이나 코드에 의해 결정될 우려가 크다.

요즘 사정의 칼바람을 맞고 있는 '블랙리스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불법으로 자행된 블랙리스트는 분명 처벌받아야 하겠지만, 세상 어느 조직이나 모임을 가도 코드는 있게 마련이다. 백화점조차 '블랙컨슈머'라는 기피 고객들이 있다. 하다못해 작은 회사에서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끼리끼리' 술'밥을 먹으러 다닌다.

우리 사회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면, '니 편 내 편'을 너무 구분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을 비롯해 오피니언 리더들부터 '내로남불'의 이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 개개인도 편 가르기라는 안팎도 없고 처음과 끝도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던지려 노력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미래 세대는 '나선니악'(나는 선, 니는 악)으로 이전투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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