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스포츠와 약물

올림픽에서 동독(東獨)이 거둔 성적은 현란하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 동독이 딴 메달 수는 519개로, 세계 3위다. 인구비로 따지면 소련의 10배, 미국의 13배나 된다. 이런 저력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다. 여기서 동독은 여자 수영에 걸린 13개의 메달 중 11개를 쓸어갔으며, 종합순위에서도 미국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그 비결은 국가적 차원의 도핑이었다. 스포츠를 통한 체제 우월성의 과시가 그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슈타지(국가안전국)가 코치, 의사, 스포츠협회 임원 등을 동원해 선수들에게 약물을 투여했다. 그 수는 무려 7천 명에 이른다. 그 후유증은 끔찍했다. 호르몬 분비 교란으로, 말 그대로 여자가 남자로 바뀌고, 고혈압'뇌경색'불임'심근경색'관절염'당뇨'기억상실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도 속출했다.

스포츠에서 약물을 금지하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런 치명적 후유증 때문이다. 그러면 위험성이 밝혀지지 않은 약물은 허용해야 할까? '그렇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옥스퍼드대 우에히로실천윤리연구소 소장인 줄리언 세벌레스쿠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성적이 운동선수의 성공과 연봉 등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만큼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성적 향상을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선수 간의 유전적 우열이란 천부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더 나은 세상' 피터 싱어)

일견 그럴듯하지만 문제가 있다.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는 타고난 몸과 정신의 능력으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약물이 개입되면 스포츠 정신은 근본부터 무너진다. 약물의 도움으로 이룬 성적은 인간의 성적이 아니라 약물의 성적일 뿐이다. 그리고 유전적 차이 극복을 위해 약물을 허용한다면 특정 종목에 최적화된 몸을 만드는 유전자 조작도 허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부 차원의 도핑을 주도한 러시아에 대해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을 보이콧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 차원의 도핑이란 IOC의 판단을 수용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IOC의 이번 결정으로 올림픽은 물론 모든 스포츠 경기가 약물에 오염되지 않은, 인간의 순수한 육체와 정신의 경연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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