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생사를 모르고 애타게 기다리는 전쟁의 잔인함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진도

오랑캐 소탕을 위해 몸을 아니 돌보다가 誓掃匈奴不顧身(서소흉노불고신)

오천 정예병이 일망타진 당했다네 五千貂錦喪胡塵(오천초금상호진)

가련타, 전쟁터에 나뒹구는 저 해골들 可憐無定河邊骨(가련무정하변골)

아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일세 猶是深閨夢裡人(유시심규몽리인)

*원제: 隴西行(농서행)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 주변의 각국 지도자들이 꼭 읽어보시라고 소개하는, 당나라의 시인 진도(陳陶, 812?-885?)의 시다. 보다시피 오랑캐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기 위해 출정을 했던 무려 5천 명의 병사들이 도리어 일망타진을 당해버렸다. 전쟁터에는 그들의 해골이 참혹하게 나뒹굴고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병사들의 아내는 아직도 자나 깨나 전쟁터의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 넓은 품에 안겨 한바탕 회포를 진하게 풀 날을 애가 다 타도록 기다리고 있다. 읽는 순간에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터져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쿵, 하고 떨어진다.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포항의 하늘은 쾌청하였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도병 이우근은 그날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머님!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 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이 저희를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재검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어머님!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싸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학도병 이우근은 살아서 돌아가 어머니 품에 '덜썩' 안기기를 이토록 뜨겁게 갈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안녕이 아니라고 했지만 바로 그것이 안녕이었다. 이 편지를 쓴 다음 날 그는 피묻은 편지를 호주머니 속에다 남겨둔 채 48명의 동료와 함께 처절하게 전사를 해버렸으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자나 깨나 기도하고 있었으리라. 5천 병사의 아내들이 이미 해골로 나뒹굴던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자나깨나 기도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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