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생 마리오/ 인문학협동조합 엮음/ 요다 펴냄
"어머니, 저는 그냥 100원만 주십시오. 100원만 있으면 올림픽 영웅과 함께 하루종일 놀 수 있습니다."
지난해 초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대입 7수생 정봉(안재홍 분)이 엄마(라미란 분)에게 용돈을 달라고 한다. 입시는 뒷전이고 우표수집, 전화번호부 외우기 등 '덕질'(좋아하는 분야에 빠져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는 것)만 골라 하는 그가 100원을 들고 향하는 곳은 동네 오락실. '하이퍼올림픽' '갤러그' '보글보글'을 정복한 그는 8비트 게임 세계에서만큼은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쌍문동 '최강자'였다. 최고의 바둑기사 최택(박보검 분)도 정봉과 최고 좌를 두고 일전을 치른다. 그 시절 정봉에게 전자오락은 대입 7수의 좌절감을 극복하고 스트레스를 풀 유일한 낙이자 존재감을 확인하는 매개물이었다. 어디 정봉이와 택이만 그랬을까.
◆슈퍼마리오에서 애니팡까지
방송가에서는 30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돌풍을 일으키더니 서점가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올해 최고 판매량을 기록,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래서 '81년생 마리오'는 제목만 봐도 낯설지가 않다. 게임이라면 한 가닥씩 하는 12인이 40년을 거쳐 간 수십 가지 게임을 소개한다.
8비트 게임을 술술 읊게 하는 이 책은 끝판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동전을 쌓아놓고 쇠자를 튕기며 시간을 보내던 오락실의 추억을 상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주전쟁 시리즈의 시초격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이어 나온 슈팅게임의 제왕 '갤러그'(정식명칭은 '갈라가'), '보글보글'(정식명칭은 '보블보블'), 자욱한 담배연기, 단순한 8비트 음악, 옹기종기 모여 구경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던 추억의 공간은 2000년대 들면서 점차 자취를 감춘다. 술자리를 1차에서 2차로 옮기는 동안 또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 잠시 들르는 곳이 됐다.
그렇다면 왜 1981년일까. 1981년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 슈퍼마리오가 '동키콩'으로 데뷔한 해다. 닌텐도사가 개발한 슈퍼마리오는 배관공 마리오가 납치된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마리오는 동전을 먹고, 점프해서 벽돌을 깨면 나오는 버섯을 먹고 키가 커진다. 마리오의 주 무기인 점프와 중독성 강한 배경음악은 게임 대중화의 일등공신이 됐다. 1990년 비슷한 시기에 가정용 게임기가 보급되면서 현대슈퍼컴보이는 중산층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닌텐도사는 급성장한다. 아케이드 게임은 콘솔 게임으로 무대를 옮겨간다. 스트리트파이터나 KOF(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는 아케이드 게임을 콘솔 게임으로, 파이널판타지는 콘솔 게임을 플레이스테이션과 온라인 게임으로 옮겨가며 대중화한 대표적인 게임이다.
PC의 보급으로 게임 덕후(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들은 신세계를 경험한다. 더불어 IMF사태와 교육열기는 가정용 게임기의 쇠퇴를, 동시에 PC시장의 성장을 이끈다. '난세의 영웅이 되어 천하를 평정한다'는 꿈을 꾸게 한 전략 시뮬레이션게임의 원조 '삼국지', 전국 모든 10대 소년을 양육의 늪에 빠트린 '프린세스메이커', 개발 시대의 전유물을 그대로 투영해 누구나 도시계획가의 꿈을 꾸게 한 '심시티' 등이 아이들을 방에 가둔다. PC게임의 전성기는 대전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정점을 찍는다. 온라인 게임 대전이 게임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온라인 대전은 롤플레잉게임 '디아블로' '라그나로크'와 '포트리스'로 이어진다. 빠른 속도와 팀 운영의 맛을 본 1981년생들은 집 밖에서도 게임을 즐긴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PC방. '방' 문화는 '플스방'과도 연결된다. 2002년 월드컵을 필두로 한 축구 열기에 힘을 받은 '위닝일레븐'은 이들을 플스방으로 안내한다.
게임은 계속 변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하면서 온라인 PC게임은 모바일 게임에 권좌를 양보한다. 2012년, 회사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전 국민을 사랑에 빠트린 게임이 등장하면서다. 연락이 뜸했던 지인에게까지 '카톡'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하트'를 잊어버릴 수 없다. 이제는 한물간 '애니팡'까지. 책은 우리가 사랑한 게임을 총망라한다.
◆게임과 사회사
게임에 대한 추억은 조이스틱, 패드, 키보드, 8비트 전자음으로 대표되는 하드웨어 게임기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저자들은 플랫폼의 변화가 가져오는 사회상의 변화, 대중문화의 양적'질적 성장에도 주목한다. 대학입시에서는 낙오자였던 정봉이 쌍문동 게임장에서는 '장학생'이고 '수석'이자 꼬마들의 우상이었던 것처럼, 가정용 게임기는 아이들에게도 '권력'을 부여했다. 게임기를 가진 집에 초대받는 친구가 생기고, 같은 게임을 하면서도 컨트롤러를 가진 '주인' 권력과 '한 게임' 하러 놀러 온 '객'을 구분하게 하였다.
게임세계는 '사이버공간'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던 이들은 게임에서 경쟁을 배우고 원리를 익혔다. 충성'지력'무력'정치'병사 등 개인의 능력치를 수치화해 현대 사회의 '스펙'을 대신하고(삼국지), 기품있는 옷을 걸치고, 비싼 음식을 먹은 딸을 고급 학원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아버지가 돼야(프린세스메이커) 한다는 부담도 생겼다. 끊임없이 자원을 채취하고, 빠르게 남의 땅을 먹고, '멀티'를 늘리는 종족경쟁(스타크래프트)이 냉혹한 현실을 대변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현실과 차이가 있다면 게임 속 캐릭터는 출발점이 같다는 점이다. 공평한 조건에서 시작하기에 열심히 하다 보면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놀이문화 속에서 자본주의, 계급, 젠더를 경험했던 세대가 자라 장기불황과 저성장, 인구절벽의 시대에 직면했다. 장애물을 뛰어넘고 끝판을 내던 용기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라도 추억 소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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