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있어서 전주에 갔다가 택시를 탄 뒤 기사에게 물었다.
"전주 분들도 비빔밥 자주 드시나요?"
나이가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기사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옛날부터 자주 가던 비빔밥 전문식당을 묻자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이름들을 서너 가지쯤 댔다. 그러면서 그곳들은 '세계 각국'에서 밀려드는 외지 손님들 때문에 맛이 좀 변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어릴 때 드시던 거하고 가장 비슷한 맛을 내는 데로 안내해 주실 수 있나요?"
기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내 행선지를 물었다. 한옥마을 근처라 하자 그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했다.
"시간 있으니까 꼭 안 그러셔도 됩니다. 어릴 때 먹던 맛이 많이 변하지 않은 곳 위주로 가주세요."
어쨌든 택시 기사는 나를 어떤 오래된 골목의 으리으리한 한옥 옆에 내려주었고 나는 '자동문'을 통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식단을 펼쳤고 대뜸 제일 위쪽에 있는 비빔밥을 주문했다. 비빔밥만 놋쇠비빔밥, 육회비빔밥, 돌솥비빔밥, 야채비빔밥 등 대여섯 종류가 있었고 전과 육회 등 사이드 메뉴도 있었다. 근자에 유명한 TV 음식 예능 프로그램에 방영되었다고 '대서특필'로 입간판을 세워두었다. 그것이 '밥맛'을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음식은 사람이 서로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고 환경에 따라 다르고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른 것처럼 언제나 맛이 다르다. 다르지 않다면 공장 산 인스턴트 음식, 혹은 재료와 조리기술과 맛이 표준화된 패스트 푸드일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그 '환상적인 미식'의 절묘함, '궁극의 맛'을 못 느끼면 감각이 무디거나 사이코패스처럼 무정하거나 뭔가 덜떨어진 사람이 되는 기분이 될 것 같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웃과 친지, 친구의 평판에 어이없을 정도로 약하다. TV 화면을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맛집'(이 단어는 무슨 '대박'이라는 조어처럼 즉물적이다)의 '공인인증서'라도 되는 듯 '받들어 모시고 있는' 식당이라면 웬만하면 피해가겠지만, 낯선 지역에 가거나 배가 한창 고플 때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저 입속으로 불평만 할 수밖에.
어쨌든 비교적 깔끔한 식당 내부와 종업원들의 재빠른 동작, 손님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 비빔밥이 날라져 왔다. 양이 좀 많은 듯했는데 슬쩍 넘겨다 본 이웃 식탁의 여성들이 먹고 있는 것과 약간은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좀 '위대하게' 보였던지, 아니면 남자와 여자에게 '양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한 것인지, 그저 내 눈에 '남의 떡이 커 보인 건지' 알 수는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게는 그 비빔밥이 진짜로 맛이 있다는 것. 그 맛은 나물과 양념에 골고루 밴 묵은 간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꼬리꼬리한' 맛이 확 다가오며 뇌리 깊은 곳에 있는 '첫 경험(맛) 저장소'의 신경망을 툭 건드렸다. 아니 어깨에 손을 얹은 정도쯤이라고나 할까? 고추장은 조금만 넣거나 안 넣어도 될 것 같았다.
우리에게 '맛이 있다'는 공통의 감각은 결국 공통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일 터, 대뇌 어느 한구석에 한국 사람 일반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맛집'으로 불리는 첩경이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맛 경험'을 보편적인 것인 양 주장하고 남다르게 화려한 언변 하나로 무슨 대단한 전문가라도 되는 듯이 구는 사람들의 허황한 상찬에 기대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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