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제천 화재참사 피해를 키운 요인들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 화재참사 소식을 접한 상당수 도민들은 "왜 이렇게 피해가 컸을까?" 하는 의문을 많이 던진다.

우리 주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목욕탕과 헬스클럽에 불이 났는데 왜 이렇게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을까?

얼마 전 경산 지역 스포츠센터와 대형마트를 유관기관과 함께 긴급 점검했다.

각종 재난소방시스템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비상재난상황에서 이 시스템이 이용객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일선 소방관들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조명이 꺼진다. 목욕탕 같은 창문이 거의 없는 곳에서 불이 꺼지면 자신의 손바닥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앞이 깜깜해진다. 유독성 연기는 한 번만 흡입해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혹독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피안내도를 확인하고 비상탈출구를 찾기란 사실상 어려워 보였다.

스포츠센터, 대형마트에는 재난 발생 시 탈출하는 대피안내도가 마련돼 있다. 그런데 사람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 설치돼 있었다. 또 형광물질로 그려져 있다고 하지만 자체발광 능력은 없다. 불이 났다고 가정했을 때 이용객들이 대피안내도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화재가 발생하면 불꽃과 연기를 피해 몸을 낮춘 뒤 입을 막고 대피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재난 시스템은 실제 상황을 대비해 보면 크게 부족해 보인다. 또 대형 다중집합시설에는 층별로 안전책임자들이 지정돼 있다. 화재 등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안전책임자들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1년에 한두 차례 형식적 교육을 받은 안전책임자들이 재난 상황 시 이용객 대피를 제대로 통솔할 수 있을까? 매뉴얼을 숙지하고 호루라기, 야광봉 등 안내기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번 제천 화재참사에서도 보았듯이 불법주차로 인한 화재진압 장비 도착 지연은 이제 화재사건의 단골메뉴가 돼 버렸다. 소방차 진입을 막는 불법주차 차주에게 부과되는 과태료는 5만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3월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해 대형참사를 초래할 수 있는 지역을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아직 재난 안전대책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에 경험했듯이 목욕탕 등 탈출구가 부족한 화재 취약 업종에는 유리창을 깰 수 있는 망치 등 탈출기구를 비치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지진방재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일본 효고현을 찾아간 적이 있다. 효고현은 1995년 규모 7.3의 지진으로 6천500여 명의 사망자와 14조원의 재산 피해를 가져온 고베시를 관할하는 도 단위 기관이다. 당시 효고현 관계자는 "재난이 발생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악조건에 처해진다. 골든타임 내에는 자신이 스스로 생명을 구해야 한다. 소방과 구조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주민 스스로의 안전의식을 강조했다.

제천 화재와 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북도는 지역 내 복합건축물 7천800여 곳에 대한 긴급안전점검에 나선다. 또 목욕탕, 헬스클럽 등 제천 화재건물과 비슷한 건축물 122개소에 대해서도 유관기관과 특별점검을 실시한다. 대피안내도의 자체발광과 게시대 개선, 긴급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한 주정차 특별주차금지구역 지정, 안전관리자의 교육강화, 화재 취약업종 탈출기구 비치 등 할 수 있는 각종 행정규정을 강화할 것이다. 무엇보다 도민들도 상상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안전의식을 높이는 데 관심을 갖고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행정을 수행하는 나 또한 도정의 최우선이자 가장 기본은 도민의 안전과 생명 지킴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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