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 소방서에 불법 주차
참사 반복은 기본원칙 무시 탓
경제 대국 자부심 실상은 허세
패러다임 바꿔야 일류국가 돼
지난해 12월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로 29명이나 희생된 사건의 핵심 원인으로 불법 주차 문제가 제기됐다. 물론 스프링클러 작동 불능, 비상경보 시스템 무용지물, 불만 대면 활활 타는 건물 외벽 드라이비트(단열재) 외장재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고 직후인 25일에는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을 지척에 둔 이면도로 양쪽이 불법 주차 차량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뉴스를 탔다. 그리고 새해 첫날 해돋이 보려는 사람들이 강릉 경포대 소방서 앞마당까지 불법 주차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대한민국에서 특별하지 않다.
소방 도로를 막은 동네 주차 차들은 이번에도 방치돼 있었다. 제천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포함하여 전국 도시의 골목길과 아파트 구내 도로가 다 똑같다. 화재 진압은 시간과 싸우는 일인데 소방차 진입을 막는 불법 주차로 인해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작은 화재사고도 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왜 화재 때마다 불법 주차가 문제시되는데 고쳐지지 않을까.
작년 9월 서울 쌍문동 아파트 화재로 3명 사망, 2015년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로 130여 명의 사상자, 그리고 화재는 아니지만 2014년 4월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침몰 사고에 이르기까지 거듭하는 참사의 핵심 원인은 한결같이 '기본 부재'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그간의 자부심은 허세에 불과했고 특히 안전과 관련해서 우리 사회는 이곳저곳에 기본 부재라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이번에도 예외 없이 재앙을 부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인류사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할 정도로 기적에 가까운 경제 성장을 한 것은 압축성장전략 덕분이다. 압축성장을 상징하는 '빨리빨리' 덕에 단기간 고도성장을 누렸지만, 그 이면에 기본은 무시하면서 속성과 편법을 당연시하는 '대충대충'이 있었다. 기본을 깔아뭉개는 '부실(不實) 사회'라는 오명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현재 겪는 대형 참사 등 심각한 부작용은 압축성장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압축성장이라는 비정상적으로 빠른 변화에는 언제나 비정상적으로 많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압축성장은 단기간 내에 성과를 추구하는 결과지향적 성장전략이다보니 목표만 바라보고 달리는 과정에서 편법이 난무하고, 과정보다 결과, 성취보다 성공, 함께 가기보다 앞서가기, 윤리적 가치보다 경제적 실리,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을 훨씬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하면 된다' 식의 성공담이 칭찬을 받는 하나의 가치관으로 뿌리내렸다.
우리 사회에선 기본, 규칙, 기초 규정을 존중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고 앞뒤가 막힌 사람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있다. 편법에 능해야 유능한 사람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그 와중에 공동체적 가치는 크게 훼손됐고 최소한 지켜야 할 안전, 배려, 사회적 규범이나 법규 준수 등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렇듯 무시됐던 가치들은 현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기에 이를 소홀한 결과 작은 사고로 끝날 수 있었던 사고들이 엄청난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포함해 제천 사건 역시 기본에 충실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건물주 등 책임자 몇몇을 처벌하면서 인재(人災)로 돌리는 데 그치지 말고, 우리 모두 '빨리빨리', '대충대충' 문화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우리 사회가 겪는 많은 참사가 바로 압축성장의 부작용, 즉 기본을 무시하는 병폐가 원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세상에 비용과 고통 없는 패러다임 전환은 없지만, 우리 사회는 기본을 지키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및 노력 등의 투자를 생산성 없는 일에 바치는 낭비라고 생각해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재라고 한탄하는 대형 재난 사고는 대부분 관련자가 기본을 무시해 일어나는 것이므로 잊고 버려둔 기본을 다시 따져보고 점검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기본을 지키고자 상당한 희생과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 일은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이므로 늦었지만 올해를 기본 세우기의 원년으로 삼아 경제력에 걸맞은 진정한 일류국가로 도약하자.
이재훈 경북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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