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도쿄의 미술관에 가면서 우에노공원에 들른 적이 있다. 공원 입구에는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1828~1877) 동상이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동상 형태가 왠지 이상하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위인이 짧은 유카타(浴衣'여름 평상복)를 입은 채 오른손으로는 개를 끌고 왼손에는 칼을 잡고 있으니 정말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눈이 툭 불거지고 배가 나온 뚱뚱한 몸매에 짧은 머리까지 더해지니 '바보스럽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메이지유신 이후 '반란군 수괴'로 죽은 사이고의 동상은 복권 후 1898년에 세워졌는데, 특유의 털털하고 서민적인 풍모를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만들어졌다. 사무라이의 날카로움과 호전성을 희석시키는 역설적인 동상이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이 누구 동상인지 물었다. 일본 역사를 약간 아는 필자는 "사이고 다카모리인데, 유신3걸(維新三傑) 중에 가장 유명하고 추앙받는 사무라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모델이란 말도 덧붙였다. 그분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사이코 다카모리?" 일행 모두가 웃고 말았지만, 필자는 남의 나라 위인을 폄하했다는 약간의 죄스러움과 그렇게 놀려도 괜찮다는 당위성을 동시에 가졌다. 당위성에는 그가 정한론(征韓論)의 주창자라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일본 최초의 육군 원수였던 그는 정한론을 끈질기게 주장하다가 정쟁에 밀려 낙향했고, '세이난(西南)전쟁'을 일으켰다가 패하고 할복했다.
매년 NHK는 일본 위인에 관한 대하드라마를 제작하는데 올해 주인공은 사이고 다카모리다. 7일 일요일 저녁 8시에 첫 방송한 '세고돈'(西鄕どん'사이고님이라는 뜻의 가고시마 사투리)은 완전한 실패작이 될 듯하다. 간토 지역에서 시청률 15.4%를 기록해 1963년 대하드라마 시작 이래 역대 두 번째 최악의 기록이다.
NHK가 사이고 다카모리를 선정한 것은 올해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기념해서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드라마가 폭삭 망하면 메이지유신을 기념하는 분위기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메이지유신의 주축은 사츠마'조슈 연합세력이었고, 일본 정계에서 여전히 기세를 떨친다. 조슈(야마구치현) 출신의 아베 신조 총리는 사츠마(가고시마현) 출신에 정한론 주창자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이념적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다. 아직도 낡디 낡은 군국주의에 경도돼 있는 이웃을 두고 있으니 고달플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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