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대구시장 선거와 김부겸

최정암 서울지사장
최정암 서울지사장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구가 낳은 인물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지역주의 타파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안정적인 수도권을 버리고 더불어민주당 불모지 대구로 와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문재인 정권 창출에 기여해 행안부 장관이 되더니 예상보다 더 잘한다는 칭찬이 쏟아진다. 경찰 수뇌부 갈등 국면, 포항 지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에 대한 대처와 현장 지휘 능력을 보이면서 정치력에 행정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가 대구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매일신문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힘입어 여권 내부에서도 김 장관 차출설이 끊이질 않는다. 보수의 심장 대구. 이런 곳의 수장 자리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니 청와대와 여권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대로만 간다면 한두 곳을 제외한 전 시'도를 석권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김 장관 본인은 극히 부정적이다. 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명분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 출마한다면 장관직, 국회의원직, 여권 내부에서의 임무 등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 지방선거 주무장관으로 출마가 부적합하다는 게 두 번째다. 선거관리와 지방분권개헌 등의 일정을 감안할 때 선거 90일 전 사퇴는 무책임하다는 것. 세 번째로는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주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현재로선 그가 대구시장 후보로 차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거의 따 놓은 당상인 것처럼 보이는데다 국정지지도가 70% 안팎인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여권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 유력 당권주자인 김부겸을 대구시장으로 하향 안정화시켜 차기 대권 구도에서 멀어지게 하겠다는 권부 일각의 기획도 분명 작용할 것이다.

지금 보수의 위상으로만 따진다면 차기 정권도 보수에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진보나 중도를 지향하는 정치세력 가운데서 차기 지도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민주당 내 영남세력의 희망이다. 부산과 경남에서 비중 있는 민주당 인사들이 있긴 하지만 김부겸에 필적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자. 김부겸이 대구시장이 되는 것이 나은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나은가. 김 장관은 이제 대통령이 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가 갈 길은 대구시장이 아닌 당 대표다. 일각에선 김 장관이 대구시장이 되는 순간 확고한 대선 후보가 된다고 말한다. 이는 틀린 말이다. 대구에서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대권 후보 반열에 올랐다고 했지만 당 대선 후보 최종 3인의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대권은 그리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갖 정치적인 악재를 극복해야 하고, 국회의원을 내 편으로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광역단체장이 이 일을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 대선 때 박원순, 남경필, 안희정, 원희룡 등이 입증했다.

그런데 만약 떨어진다면? 천신만고 끝에 얻은 국회의원직도 잃고, 당권의 꿈은 날아가 버린다. 혹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버려두겠느냐고 하지만 그래 봐야 장관급 자리 하나 받는 '개털'로 전락한다. 김부겸이 후보로 나선다면 이번 선거는 여권이 전혀 기대하지 않는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된다. 보수의 총결집과 부활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부겸을 지지하는 대구 사람들도 결국은 인물보다는 정당을 선택하는 쪽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은 내심 김부겸 등장을 바라고 있다.

여기다 대구시장이 되면 대구의 프레임에 갇혀 살아야 한다. 이는 시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김부겸은 본인을 위해서나 고향 발전을 위해서도 큰 정치를 해야 한다. 대구시장 김부겸과 당 대표 김부겸은 무게감부터 완전히 다르다. 전국 광역단체장을 석권하고 싶은 청와대나 민주당으로선 포기하기 어렵겠지만 김부겸을 놓아주는 것이 국정운영을 잘하는 길이다. 정작 대구까지 먹어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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