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두 개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세계최고 뮤직페스티벌인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한국 최초이자 최다 공식 초청받았다는 것과 한옥에서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같이 사용하여 음반을 녹음했다는 것이다. 이 중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초대받았을 때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2011년 두 번째 유럽투어를 준비하던 중 2009년 첫 번째 유럽투어 때 영국에서 만난 공연기획자에게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가해 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두말할 것 없는 '예스'였다. 몇 가지 서류를 보내달라고 했다. 열심히 만들어 보냈다. 답 메일이 왔다. 영어로 번역해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당연히 번역해서 보냈다. 영상을 보내달라고 했다. 바로 보냈다. 몇 분짜리로 편집해서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또 편집해서 보냈다. 영상에 장면을 설명하는 영어 자막을 넣어 달라고 했다. 귀찮지만 보냈다. 영어 자막 중 몇 단어를 교체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요청에 따라 교체해서 보냈다.
그 이후도 계속 이와 같은 요구들이 있었고 결국엔 한국 최초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초청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근데 사실 중간에 포기할 뻔했다. 일이 힘들어서? 일이 어려워서? 아니 귀찮아서였다. 20번이 넘는 메일, 그보다 많은 통화를 위해 졸린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새벽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모든 일이 힘들지 않았다. 어렵지 않았다. 그냥 귀찮았다. 그렇다. 이 귀찮다는 마음 때문에 지금 나를 가장 대표하는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뻔했다.
남들이 봤을 때 멋있어 보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일이 나름 문화, 공연 관련 일이다. 이 일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은 결코 '멋있는 일'이 아니었다.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일은 포스터를 붙이고 떼고, 팸플릿을 접고 펴고, 명단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의자를 깔고 접고 의자에 이름표 스티커를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는 '귀찮은 일'이 거의 다다.
나는 천 개의 의자를 준비하지만 관객은 단 하나 나의 이름표가 붙은 의자에 앉기 때문에 이 일은 관객을 위한 중요한 배려이다. 마치 요리사가 100개의 도시락을 준비하지만, 도시락을 먹는 100명의 각 개인에게는 오직 단 하나의 도시락인 것처럼….
귀찮은 일이 모여 멋지고 위대한 일을 만들어 낸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막상 닥치면 여전히 귀찮은 일은 싫다. 나아지는 건 반복과 숙련을 통해 귀찮은 일도 정말 완성도 있게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 처리 속도도 빨라지고 때로는 재밌어지기도 한다. 계속 하다 보면 그 재미가 점점 늘어가겠지. 사실 지금의 내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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