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5시 10분 대구 중구 약령시 앞 승강장. 어스름한 가로등 빛을 맞으며 706번 시내버스 한 대가 홀로 서 있다. 운전기사 백영만(59) 씨가 입김을 불어가며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 모습이 버스 창 밖으로 비쳤다. 청소를 마친 백 씨가 셔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계기판의 먼지를 훔치고, 앞유리 와이퍼를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20여 분에 걸친 운행 준비는 미끄럼 방지포가 붙은 흰 장갑을 끼면서 끝이 났다.
오전 5시 30분. 706번 버스가 '부르릉' 몸을 떨며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새벽 첫차. "많이 추우시죠? 반갑습니다." 그가 첫 승객에게 인사를 건넸다. 느릿느릿한 그의 목소리는 옷깃에 걸린 소형 마이크를 거쳐 버스 안을 꽉 채웠다. 인사를 받지 않는 승객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너무 이른 시간이니 그럴 수도 있죠." 웃어넘기는 백 씨는 자칭타칭 '긍정왕'이다. 5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달서구 대곡동 차고지. 아침 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한 백 씨가 운행을 시작했다. 오전 7시 50분, 다시 약령시 승강장에 도착할 때쯤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가 운전대를 꽉 잡았다. "눈이나 비가 오면 바짝 긴장을 하다 보니 어깨도 결리고 허리가 뻐근해요." 버스에 오르던 한 승객이 먼저 백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활짝 웃는 백 씨의 눈가에 주름이 깊었다.
오전 5시 30분. 수성구 범물 1동 차고지에서도 이종백(63) 204번 기사가 운행 준비에 한창이었다. 오전 근무조인 이 씨의 출근시간은 오전 3시 30분. 북구 관음동 차고지에서 수성구 범물동까지 버스를 가져와야 한다. 이른 새벽인데도 그는 졸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어렵지만 꽤 적응이 돼 힘들진 않아요."
지난해 '대구시가 선정한 친절기사'에 이름을 올린 이 씨에게 미소와 웃음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가 승객들을 반갑게 맞았던 것은 아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그는 3년 동안 휴일만 되면 동네 뒷산을 오르며 만나는 모든 등산객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제 인사에 당황하는 등산객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계속 인사하는 연습을 했더니 저도 모르게 인사가 나오더군요."
오전 6시. 황금동 승강장에서 첫 승객 박모(53) 씨가 버스에 올랐다. 박 씨는 오전 4시까지 대리운전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밤늦게 운전을 하는 직업이니 늘 피곤하고 진상 고객들로 힘든 날이 많은데 이렇게 새벽부터 기사님의 친절한 인사를 받으니 기분도 좋고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고 웃었다.
하지만 모든 승객이 고마워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20대 남성이 운전 중인 그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러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승객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이 남성을 데려가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 씨는 퇴직 후 버스기사들을 상대로 친절'서비스 강의를 하는 것이 꿈이다.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살아가는 시민들의 발이 된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도 버스기사들과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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