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리릭 철컥'. 현관문을 열자 TV를 보고 있던 아이가 한달음에 뛰어왔다. 아빠가 오는 소리를 귀 밝은 아이가 놓칠 리 없다. "아빠!"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린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 티없이 웃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고통 속에 눈을 감았을 고준희 양이 떠올랐다. 숨질 당시 준희 양의 나이는 고작 다섯 살. 내 아이와 동갑이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을 나이. 가슴 한쪽이 아렸다.
'아동학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심장이 툭 터지는 것만 같다. 부모가 되기 전과 비교하면 체감 정도가 수십 배 차이 난다. 전에는 '약한 아이를 때리다니 이런 나쁜 사람 같으니' 정도였다면 이젠 나도 모르게 험한 욕설이 튀어나올 수준이다. 내 아이가 맞은 것 같고, 상처 입은 내 아이가 울고 있는 것 같다.
이토록 가슴을 후벼 파는 아동학대 사고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건수는 지난 2013년 6천796건에서 2016년 1만8천700건으로 3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대구경북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 대구의 아동학대 사건은 552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무려 80% 증가했다. 경북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같은 기간 36%가 늘었다.
인간은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해야 한다는 본능에 따른다. 그런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일은 보통의 상식을 벗어난 행위다. 하지만 아동학대 가해자 10명 중 7명은 부모다. 왜 그들은 자녀를 죽음으로 몰아갈까.
가장 큰 원인은 빈곤이다. 불안정한 수입 상태는 아동학대 확률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다. 코넬 대학은 2014년 소아과학저널에서 수입 불균형이 아동학대와 방치를 이끄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부모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아동학대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부모에게서 제대로 배운 자녀 교육 방식이 없다 보니 양육 과정에서 갈등을 겪을 때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피해 아동은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분노나 화 등 부정적 감정에 민감해진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불안해하며,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계선 성격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보육 교사도 예외는 아니다. 지인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폭력적인 보육교사는 어린 시절에 가정폭력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성장기에 학대를 경험하면서 상실감을 겪은 이들 중 일부는 '나는 아이들을 잘 돌보겠다'며 보육 현장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보육은 정말 고되죠. 아이들이 잘 통제되지 않고요. 그러면 잠들어 있던 폭력의 상처가 비슷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어요."
아동학대는 초기에 발견해 가해자와 격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아동학대 발견율이 OECD 국가들에 비하면 까마득히 낮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아동 1천 명당 1.32명으로 미국의 9.4명(2014년), 호주의 8명(2014년)보다 현저히 낮다.
아동학대 신고는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됐거나 의심되는 경우 누구나 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교직원, 의료인,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학원 강사 등 25개 직군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전체 신고 건수 중 신고 의무자들의 신고 비율은 27.9%(2016년 기준)로 전체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적극적인 아동학대 신고를 유도하는 법안들은 이미 여러 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아동학대 피해자와 신고자 등을 학대 가해자와 격리 조사하는 방안도 있고, 신고 포상금 제도나 13세 미만 및 장애아에게 중상해를 입히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안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준희 양이 고통받고 있을지 모른다. 앞으론 아이를 괴롭히는 부모를 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깔깔 웃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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