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이종(異種) 보수의 대구 상륙

이춘수 편집부국장
이춘수 편집부국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홍두깨' 같은 정치인이다. 그는 홍두깨처럼 작지만 단단하다. 말은 짧고도 강렬하다. 그의 언행은 상대를 송곳 찌르듯 자극적이고도 흥분케 한다. 사실이야 맞든, 아니든 상대는 크게 분노하고 상처받는다. 그래서 파괴력이 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홍 대표는 비난을 살 만한 정치적 발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못마땅할 때는 삿대질도 곧잘 한다. 제1 야당 대표의 무게감은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 점잔 빼고, 때론 답답하기까지 한 대구경북(TK) 국회의원만 봐 온 시도민들에게는 속 시원하다는 느낌도 준다.

홍두깨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풀 먹인 천을 빳빳이 고를 때. 고기를 다질 때, 만두나 국수를 빚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홍두깨가 이러하듯 홍 대표도 보수 진영에서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홍 대표는 또 산전수전 다 겪었다. 권력을 향해 칼을 휘두른 검사, 서울에서 4선 국회의원, 두 차례의 경남도지사, 원내대표와 당 대표 경력이 말해주듯 정세 판단이 빠르고 전투력도 갖췄다. 이런 점에서 기존 TK 보수 정치인들과는 다른 야전형 보수 정치인이다.

이런 홍 대표가 대구에 새 둥지를 틀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홍 대표가 대구 북구을 입성을 공식화한 후 그 지역구의 홍의락 국회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측이 만세를 불렀다는 후문이다. 현지의 여성층과 30, 40대층에서 홍 대표에 대한 분위기가 아주 안 좋은 이유에서란다.

외지에서 정치를 하다 대구에 진출한 유력 정치인들은 다수 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조순형 전 의원(2004년 17대 총선), 노무현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의원(2008년 18대 총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가 대표적이다. 조'유 전 의원과 김 장관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해 김 장관은 꽃을 피웠다.

반면 홍 대표는 TK를 자신의 정치 텃밭으로 삼아 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홍 대표의 선택은 TK 시도민들에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다. 아직은 홍 대표를 TK 리더로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시도민들에게 곤혹스러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6'13지방선거에서부터 시도민의 순수한 선택이 자칫 여야 정치권이 만든 프레임에 구속돼 'TK의 위대한 수성'이니 '보수의 볼모'니 하는 이분법적 잣대에 매몰될 수 있어서다.

왜 시도민과 지역 정치권이 홍두깨로 한방 얻어맞아야 했나. 온실 속에서 살아온 지역 정치권의 무능과 신념 부재, 몰(沒)유권자 의식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주류인 자유한국당 정치인 어느 누구도 "왜" "무엇을 위해" 홍 대표가 대구에 입성하는지를 묻는 이가 없다. 오히려 줄 서기에 바쁘고, 용비어천가를 부르기에 바쁘다.

TK 정치인들이 공천만을 위해, 양지만을 좇았을 뿐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가"라는 골수에 사무친 철학 없이 정치를 해온 업보가 시도민들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의 자업자득이다. 홍 대표가 정치권을 향해 때론, 유권자를 향해 시도민 정서와 다른 언행을 보였을 때 지역 정치인들이 과연 바른말을 할 수 있을까.

홍 대표는 틀에 박힌 TK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르다. 보수지만 왠지 낯선 홍 대표의 출현에 TK 시도민들은 이제부터 깊은 고민에 들어갈 것이다. '보수를 지키기 위해 TK에 입성한다'는 홍준표의 정치에 동의하는 것이 과연 TK는 물론 대한민국의 정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서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고달픈 TK 시도민들에게 올해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그래도 지혜롭게 잘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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