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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 기름 콸콸… "올 농사 어떡해"…포항 동서유화 아스팔트유 누출

누출된 9천여L 인근 논 덮쳐, 오염 흙 걷어도 복구 불투명…업체 늦도록 누출 사실 몰라

포항 북구 흥해읍 용천리 동서유화에서 흘러나온 아스팔트유 9천여ℓ로 오염된 논을 땅 주인 최영의(75) 씨가 바라보고 있다. 배형욱 기자
포항 북구 흥해읍 용천리 동서유화에서 흘러나온 아스팔트유 9천여ℓ로 오염된 논을 땅 주인 최영의(75) 씨가 바라보고 있다. 배형욱 기자

"오염된 흙을 걷어내는 것만으로 논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다시 깨끗해지겠습니까."

14일 오후 3시쯤 포항 북구 흥해읍 용천리. 최영의(75) 씨는 아스팔트유 9천여ℓ로 오염된 자신의 논을 바라보며 가슴을 쳤다. 일대에는 아스팔트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중장비가 흙과 뒤엉킨 아스팔트유를 걷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땅속 깊이 스며든 아스팔트유가 눈에 띄었다. 이미 단순한 흙 걷어내기 작업만으로는 논농사를 짓기 어려울 정도로 오염이 진행된 것 같았다.

최 씨는 "기름에 오염된 곳을 이렇게 중장비로 들어내면서 복구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로 끝나면 안 된다. 비가 와서 논에 물이 차 보면 기름이 뜨는지 안 뜨는지 오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논농사 전에 걷어낸 흙을 성토해서 수평을 맞추기도 해야 한다"며 "이런 게 다 확인되지 않는다면 올해 농사를 짓기 어려울 수 있다. 모를 심기 전까지 논이 완전히 복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사고 한나절이 지나도록 누출사실을 업체로부터 전달받지 못하고, 동네 주민에게 전해 들은 것도 최 씨를 분통 터지게 했다. 그는 "동네 주민이 '논에 시커먼 게 잔뜩 있더라'는 말을 듣고 그냥 조금이려니 해서 나와보니 시커먼 기름이 잔뜩 논을 뒤덮고 있어 많이 놀랐다. 이런 일이 있으면 논 주인을 제일 먼저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고는 강원도에 본사를 둔 유화아스팔트 제조업체인 동서유화의 포항 시설에서 13일 오후 아스팔트유가 대량 누출되면서 벌어졌다.

포항시에 따르면 당시 동서유화는 유화아스팔트 저장탱크 전기설비가 자꾸 누전돼 오후 2시부터 3시간 수리를 마치고 설비를 가동시켰다. 다시 설비가 정상 가동되는 과정에서 아스팔트유를 이동시키는 펌프가 고장 나 저장탱크 안에 있던 3만4천여ℓ 아스팔트유 중 9천여ℓ가 밤사이 새어나와 인근 최 씨의 논 300여㎡를 덮쳤다. 업체에는 당직근무자가 없던 터라 누출사실을 몰랐다가 다음 날인 14일 오전 11시쯤 돼서야 포항시에 신고했다. 신고를 전달받은 포항북부소방서는 아스팔트유 회수작업을 진행했으며, 포항시는 안전조치와 아스팔트유에 오염된 흙을 폐기물 처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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