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북경중의대학병원에 연수차 방문하였다. 이 병원은 북경에 있는 가장 큰 중의병원으로 중국 내에서도 중의
(전통의학)와 서의(현대의학)의 협진과 교차진료를 통한 진단 및 치료로 유명한 병원이어서 색다른 경험이 기대되었다. 중국은 각 도시마다 서의병원과 함께 중의병원을 반드시 하나 이상 운영해야 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으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두 의학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아 중의학자이든 서의학자이든 현대의료기기와 진단도구, 약품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이번 연수 기간 입원 환자 관리, 외래 환자 진료 등 중국 의료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몇몇 환자와는 나의 짧은 중국어로 간단한 상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이 병원에서는 의사가 진료를 할 때 환자의 얼굴을 말없이 찬찬히 살펴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 환자가 먼저 자신의 병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의사는 끝없이 들어준다. 그것은 망문문절(望聞問切), 즉 묻기 전에 듣는다는 그들의 진료 철학이란다. 평소 검사결과나 이전의 의료기록에 먼저 눈이 가고 필요한 정보만 빠르게 물어보던 나였기에 매우 흥미로웠다.
2년 전부터 보건소 진료실을 벗어나 지역 주민들에게 만성질환 등에 대한 강의를 해왔다. 한 시간 안에 끝나는 강의지만 넘치는 질문을 받다 보면 강의 시간만큼 시간이 흐르곤 한다. 질의응답을 하다 보면 환자들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들어주는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환자의 검사 수치와 진료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질환의 변화되는 과정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하는 데 집중해왔지 환자의 얼굴을 살피거나 대화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환자가 들어오는 순간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들어주면서 속마음을 읽어보려 애쓴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얼굴에 더욱 집중하며 표정부터 살핀다. 근심은 없어 보이는지, 피곤하여 축 처져 있는지, 우울해 보이지는 않는지…. 이러한 표정의 조각들을 살피며 말을 건넨다. 그렇게 대화를 풀어내면 환자들도 자신의 몸 상태나 근황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하고 평소 복용하는 약이나 섭생에 대해서 궁금하였던 것을 편하게 풀어놓는다.
앞으로 나는 지금까지 봐왔던 얼굴보다 더 많은 환자들의 얼굴을 마주할 텐데, 그들의 얼굴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무언가 불편하여 어두워진 얼굴을 조금이나마 밝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얼굴을 읽어내려는 나의 시도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법정 스님도 사람의 얼굴은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어 속마음을 표현하는 '얼의 꼴'이라 했다. 그 말을 곱씹어 보니 비단 진료하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아 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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