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쟁력은 스피드·역동성
빨리빨리 부작용도 사회 만연
정치·행정은 시대에 뒤떨어져
주권자 감시 나서야 변화 시작
닭의 해인 정유년에는 유독 대형사건이 많았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 북핵과 미사일 발사, 사드 보복, 지진과 수능 연기, 적폐청산 등 큰 사건만 꼽아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자고 나면 사건이 터지고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어 국민이 잠시도 뉴스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외국에서는 10년 살아도 겪지 못할 일들을 우리 국민은 지난 1년 동안 겪었다. 이처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스피드(speed)하고 다이내믹(dynamic)한 변화무쌍한 나라다. 스피드와 역동성은 한국이 지닌 최고의 경쟁력이다. 한국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외국과 경쟁해서 계약과 공사를 따낸 비결도 여기에 있다.
근래에는 이런 한국인의 기질과 문화가 드라마나 케이팝(K-POP)과 같은 한류진출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스피드와 역동성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후진국형 사건'사고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1년도 안 된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큰 가상화폐 버블을 만들어낸 쏠림현상은 빨리빨리 문화가 빚어낸 대표적인 부작용들이다. 지난해 발생했던 낚싯배 침몰사고, 제천 화재사고, 대형 크레인 붕괴사고, 목동 신생아 사망사고들의 공통점은 빨리빨리 문화가 개인주의와 천민자본주의를 만나 생명경시 풍조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제천 화재사고가 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건물의 비상구에는 상품들이 쌓여 통로를 막고 있고 소방도로는 불법주차가 빼곡하다고 한다. 돈만 벌면 나만 편하면 직업윤리나 공공질서, 타인의 인권이나 생명을 무시하는 문화가 만연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소방당국만 탓하기에 앞서 평소 비상구나 소방도로 불법주차에 관심이나 시민의식이 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가상화폐 투기 열풍도 한국의 쏠림 문화가 빚은 부작용이다. 한국은 불과 1년 만에 가상화폐 거래량과 투자자 수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였고, 묻지 마 투자 열풍으로 한국에서 가상화폐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40% 이상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에서 수차례 가상화폐 거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대박 소문에 쏠린 투기 열풍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회와 정부는 성난 민심을 달래고자 책임자 처벌과 규제강화를 되풀이하지만 정작 사고의 근본원인은 제도보다 사람과 우리 사회에 만연된 후진적 문화에 있다. 따라서, 사람과 문화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규제의 사슬과 공무원의 복지부동만 심화할 뿐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변화가 느린 분야도 있다.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민간 부문과 달리 정치·행정과 같은 공공 부문은 변화에 가장 굼뜬 분야다. 지금의 정치권력구조인 5년 단임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1987년 도입된 제도다. 그동안 수없이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지만 30년 이상 고쳐지지 않았다. 행정 분야도 아직 개발연대시대의 관치와 규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신산업육성을 가로막고 있다. 지방선거도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지역 이슈보다 중앙정치에 표심이 휘둘리고 있다.
올해는 헌법 개정과 지방선거가 예정된 만큼 그동안 변화에 뒤처진 공공 분야와 지방에도 역동성과 스피드를 불어넣었으면 좋겠다. 새해는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선진국 관문으로 여겨온 3만달러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3만달러 달성보다 삶의 질을 높이고 사람이 우선인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이런 나라는 정부 혼자만으로 이룰 수 없다. 국민이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고 감시해야 이룰 수 있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되어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변해야 문화가 바뀌고 나라가 변한다는 말이다. 변화의 시작은 타인을 배려하는 데서 출발하자. 배려는 개인과 집단을 긍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권혁세 단국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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