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10여 년 전, 송봉모 신부의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에서 100자도 안 되는 문장이 작가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 책에 나오는 마리너스 수사와 성 베네딕도회 왜관 남자수도원의 신비로운 만남에 대한 글이었다. 한국전쟁 중 1950년 12월 20일 흥남철수 때, 1만4천 명의 한국인을 구조한 빅토리아러디스호의 선장 마리너스의 소설보다 더한 실제 이야기를, 허구의 한 청년 수도자와 엮어서 능숙한 솜씨로 서사를 창조한다. 장편소설인 『높고 푸른 사다리』는 신부 서품을 앞둔 베네딕도회 수사의 사랑과 이별, 죽음과 상실의 순례이자 성장 소설이다. 소설은 정요한 신부가 한때, 신보다 사랑했던 소희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아빠로부터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대체, 왜?'라는 짧고 높은 외침으로 독자의 심장을 파고든다. '대체, 왜?'라는 질문은 삶과 죽음, 운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과 불의, 정의와 제도에 대해서라는 것, 인간의 영역에서 신과 씨름해야 한다는 걸 세상에 외친다. 신의 멱살을 붙들고 "지금 여기서! 잘 살도록 축복을 내려달라"고 한 야곱처럼 반항했고 싸웠다. 야곱은 세속의 일에 매달렸으므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다리를 타고 훌쩍 올랐다. 어처구니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갓난아이 앞에서만이 아니라, 불의한 권력자 앞에서(pp308-309), 정의로운 사람들이 함부로 짓밟히는 현장 앞에서, '대체, 왜?'라고 신에게 끈질기게 질문하기를 독려하고 있다. 진정한 세속이야말로 진정한 천상일지도 모르니까.
작가는 섬세한 통찰력과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독자의 감정이입을 사냥한다. 공지영의 소설은 사랑이라는 달콤한 성분으로 당의정을 입힌다. 독자가 단맛을 느낄 즈음, 이내 몸 전체에 퍼지는 약리 작용, 바로 한 사발의 보약 세례이다. 작가는 사회문제라는 단단한 공감대 위에 사유의 구조물을 세운다.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당당히 맞서는 문자의 시위이다.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민감하고 부드러운 촉수로 독자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작품들을 발표해 온 작가이다.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는 한 번 읽고 덮어두는 소설이 아니다. 크리스천만을 위한 책은 더욱 아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ㅡCRAS TIBI). 인간이 어떤 시련과 맞닥뜨렸을 때 '여기에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시련을 품위 있게 넘길 수 있다. 품위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려움을 잘 견디는 사람이다. 마리너스 수사의 말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p355) 서로 돕는 배는 난관을 이겨냅니다. 우리 모두는 약하고 모자라니까요."(pp345-346)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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