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천지였다. 노랗고 하얀 아침 햇살이 마침내 차실 창호지 깊숙이 닿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보석처럼 눈이 부시고 이마와 찻잔 위에 쏟아져 내렸다. 눈이 밝아지고 방 안이 따뜻해졌다. 시계 소리는 이어서 아홉 번을 쳤다. 투명한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바깥에서는 추운 고라니가 울었다. 그날그날 햇볕이 조금씩 천천히 길어지고 있다. 종문(宗門)에는 차 향기가 가득했다.
조주 스님은 120세까지 사신 고불이다. 남전 선사의 제자가 돼 스승을 모시고 안목을 갖춘 선사의 정법안장을 이었다. 남전 선사의 회상에 700여 명의 많은 대중들이 모여서 정진하고 있었다. 선원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 동서 양쪽의 선원 스님들이 서로 자기네 선원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시비로 떠들썩했다. 그때 남전 선사가 운집종을 치고 대중들을 강당에 모이게 했다. 선사께서 시자에게 "고양이와 칼을 가져오라" 하니 시자가 그것을 법상 위에 올려놓았다. 남전 선사께서 고양이를 치켜들었다. "이 고양이로 인해 시비가 분분하니 오늘 그간의 공부를 점검하겠으니 한마디 말해보라. 제대로 말하는 자가 있으면 고양이를 살려 두겠거니와 만약 이르지 못한다면 단칼에 고양이를 두 동강 내버리겠다. 속히 일러보라!" 이렇게 세 번을 재촉했다.
아무도 벙어리가 되어 말하는 자가 없었다. 700명의 대중은 그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남전 선사는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
방장실에서 쉬고 있을 때 출타 중이던 조주 스님이 돌아와서 인사를 올렸다. 남전 선사께서 오늘 일을 들어서 말씀하셨다.
"조주 너라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조주 스님은 곧바로 일어나 벗었던 짚신을 머리에 이고 방장실을 총총히 나가 버렸다. 남전 선사는 그 광경을 보고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는 이전에 달마 대사가 신발 한 짝을 들고 웅이산으로 돌아가라고 일갈하셨다. 절대의 순간에서 처음부터 논리가 봉쇄되어 애초부터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뛰어들어 말하는 것이 선의 본질이 된다.
조주 스님은 120세를 살았다. 누구나 관음원에 찾아오면 차를 마시게(喫茶去) 하고 차를 권했다. 80세가 되어서 비로소 행각을 그치고 처음으로 관음원 주지를 하시며 40년 동안 신도 집에 도움의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았다.
스승 남전 선사의 '평상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씀을 쉬운 말과 비유로 중생을 제도하셨다. 스스로에게 경계하시길
"일곱 살 먹은 어린 사미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세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조주 스님은 친절하셨다.
서양 기자가 달라이라마에게 물었다.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나의 종교는 친절(Kindness)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차 한 잔에 무량락이 있으니 서로 눈을 마주하며 만복! 만복! 하고 축원했다. 영설 차인은 차회 일기를 21년째 기록하고 있다. 흥이 나면 동다송 긴 문장 전문을 암송하기도 한다. 모든 일상의 하나하나가 일상 속에서 공감하며 생활이 되며 수행이 되는 것이다. 차인의 마음에는 하찮고 소소한 기억이 모두 기록되고 그 마음에는 아름다움의 정토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6일 내가 좋아했던 이승훈 교수가 작고했다. 그는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시인이었다. 문득 이 교수의 시가 생각이 나 옮겨 본다.
"식탁엔 마늘 파 하얀 마늘 푸른 파가 나를 부르네,
천성이 아둔한 내가 마늘 먹는 늦은 봄
마을 앞엔 사람 하나 없고 지나가는 바람이 묻는다.
어디서 오시오?
그대 떠난 봄 하얀 마늘 먹으며 식당 구석 작은 방에 누워
쉬고 싶어라.
문득 창문 넘어온 햇살이 말하네,
너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왔어."
-이승훈의 봄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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