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는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흐루쇼프 집권기인 1960년대 개혁 관료들이 처음 제시했던 것이다. 그 목적은 소련을 더욱 활력 있는 사회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으나 문서상으로만 존재했다. 고르바초프가 한 일은 이를 문서철에서 꺼내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흐루쇼프 집권기에 이 개념이 출현한 배경은 혁명 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신세대의 출현이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1957년 소련이 주최한 세계청년페스티벌이다. 131개국에서 3만4천 명이 참가해 세계 좌파 학생운동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이 행사의 목적은 자본주의 국가 청년들을 소련식 생활양식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청바지 차림에 자유분방한 언행의 방문객들을 접하면서 소련 청년들이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국가 청년들이 사회주의적이 된 게 아니라 소련 청년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변한 것이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록과 재즈를 들려주는 '미국의 소리', '자유 유럽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또 단조롭고 칙칙한 사회주의적 옷을 버리고 화려한 미국식 의상을 걸쳤으며, '황야의 7인' '뜨거운 것이 좋아' '타잔' 등 자본주의 국가 영화에 열광했다.
이는 사회의식에서 신세대와 혁명세대의 단절을 가져왔다. 1961년 소련 '공공여론연구소'의 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소련 청년 다수가 10월 혁명의 이상을 냉소하거나 환멸을 느낀다고 한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였다. 흐루쇼프 시대의 '개혁'과 '개방'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20, 30대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단일팀은 한국 대표팀이 정당한 노력으로 따낸 출전 기회를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가 박탈하는 것으로,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는 대북(對北) 인식에서 지금 젊은 층이 '우리 민족끼리'에 호의적이었던 1980, 90년대 젊은 층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권은 이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당황해 하고 있다. 지금의 20, 30대가 자기들이 젊을 때와 똑같을 것이라는 '사고의 게으름'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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