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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父는 한국전 父는 월남전…손자 류범열 씨는 최전방서 부상 국가유공자

좌측이 류기태 씨
좌측이 류기태 씨
류범열 씨
류범열 씨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23일, 총탄이 빗발치던 산 중턱에서 류기태(당시 30세) 씨가 카빈 소총을 끌어안은 채 쓰러졌다. 기태 씨의 가슴에서는 뜨거운 선혈이 흘러나왔다.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다 징집된 지 두 달 만이었다. 1920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그의 유해는 머나먼 타지에 그대로 남았다.

# 기태 씨의 아들 근영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65년 육군에 입대했다. 의무병으로 최정예 맹호부대에 배치된 그는 그해 10월 베트남으로 파병됐다. 수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긴 그는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깊은 후유증이 남았다. 심한 피부병으로 밤잠을 설쳤고, 직장 생활도 힘들었다. 지독한 고엽제 후유증 탓이었다. 그는 지난 2002년 작고하기 직전에야 고엽제 후유증 진단을 받고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 근영 씨의 아들이자 기태 씨의 손자인 범열(43) 씨도 1995년 육군에 입대했다. 최전방 제12보병사단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범열 씨는 차량 정비 도중 배터리가 폭발해 왼쪽 눈을 잃었다. 그는 지난 2004년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러 병무청을 찾았다가 '병역명문가를 찾는다'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류씨 가문은 병역명문가를 선정하는 첫해에 대통령상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구에 살고 있는 범열 씨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나서서 희생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그런 영향인지 열 살 난 아들도 군대에 꼭 가고 싶다고 해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웃었다.

병무청이 3대에 걸쳐 나라를 지킨 대구 류기태 씨 가문의 뒤를 이을 '병역명문가'를 찾고 있다. 대구경북병무청은 오는 2월 20일까지 '2018년도 병역명문가' 신청을 받는다. 병역명문가는 3대가 모두 현역병으로 병역을 이행한 가문이다. 대구경북에서는 지난 15년간 모두 453가문이 병역명문가로 선정됐다. 이는 서울(716가문)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병무청 홈페이지(www.mma.go.kr)에서 신청서를 작성한 뒤 3대 가족을 확인할 수 있는 제적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군 복무 확인서 등을 병무청에 제출하면 된다. 병역명문가 가문에는 병역명문가 증서와 인증패가 수여되고, 표창과 함께 훈격 및 소정의 포상금을 준다. 전국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등 697곳에서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문의 1588-9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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