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랜만입니다] 처음이라 그래요-윤동미 동시집

저기 가로등 아래/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저씨// 그림자가 길게 따라가더니/ 점점 기어올라 등에 업힌다. // 지치고 힘든 하루를/ 아저씨가 업고 간다.

'힘든 하루'다. 피곤한 가마니 등에 짊어지고 가는 귀갓길. 제법 잘 표현됐다며 피식하며 넘긴 시집의 몇 페이지 뒤, 붕어빵 아저씨가 등장한다. 개업 첫날, 군데군데 탄 붕어빵을 오래 기다린 손님들에게 덤으로 담아준다. "처음이라 그래요"라며. 햇병아리 사회초년생들은 울컥할 이야기다. 이쯤 되면 어른들을 위한 동시다. 아이의 눈으로 그려낸 어른의 시다.

윤동미 시인이 첫 동시집을 냈다. '처음이라 그래요'다. 첫 시집을 낸 시인 자신에게 속삭이는 듯한 제목이다. 그러나 이 동시집, 켜켜이 쌓여 있던,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기억들을 재현시키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제법 따뜻한 기억들이다.

어김없다. 어린이의 눈과 귀로 들은 말들의 묘사다. 짧다. 전문용어로, 간결하다. 10행 안팎이다. 54편의 작품이 실렸다. 날로 먹은 게 아니다. 압축이다. 읽는 이가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시험답안으로 자주 등장하는, '여백의 미'다.

조금 내렸다./ 진짜 조금 내렸다./ 우산 쓰기도 좀 그랬다./ 땅거죽이 젖을 듯 말 듯// 그래도 그 비에/ 새싹이 돋아났다.

상징성이 있는 첫 시집의 첫 편, '봄비'다. '첫걸음이 의미있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내디디라'는 말로 들린다. '별거 아닌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넌 이미 결과물을 만들어냈어'라는. 명백한 응원이다. 박방희 대구문인협회장은 "윤동미 동시의 특징은 간명함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게 읽는 이가 공감하고 울림을 받는 대목"이라고 했다. 길게 풀어쓴다고 울림이 커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상황 묘사가 심리 묘사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첫눈'이라는 시다.

장갑 끼고 목도리 하는 사이// 그쳐 버렸다.

수채화처럼 담백한 그림이 함께 실려 상상을 돕는다. 동화작가 손호경 씨가 맡았다. 영천 출신 윤동미 시인은 2008년 아동문예 문학상으로 등단했다. 2015년 '눈높이아동문학대전' 동시 부문 수상자였다. 95쪽. 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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