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는 동안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던 때는 서울 근무 시기였다. 특히 대구경북(TK) 출신 출향 인사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라면 어김없이 질문받았다. 간혹 질문자와 동향인 것이 확인될 때라면 이후 한 시간 정도는 고향에 대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고향을 떠난 지 십수 년이 넘는다면 당연히 최근 고향 소식이 궁금했을 테지만,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온 본인에게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고 자란 고향 경북 영천에 대해 공부까지 했던 우스운 일도 있다.
TK 사람들의 뿌리에 대한 애착은 타시도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3년간 서울생활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한 예로 국회에 가면 '보리 모임'이라는 것이 있다. 2000년대 중반 TK 출신 국회 보좌진들의 친목단체로 시작한 이 모임은 지금은 국회 내에서 상당한 세(勢)를 과시하는 단체가 됐다. 예산철만 되면 보리 모임은 큰 역할을 한다.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해마다 가져가는 국비 중 상당 부분은 이 모임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 다른 지역에도 이런 비슷한 모임이 있지만 활성화가 되지 않아 TK의 단합력은 언제나 타시도의 부러움 대상이 되곤 한다.
지난 19일 통합 대구공항 이전후보지 선정을 위한 대구시·경북도·군위군·의성군 4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지역민들은 우리 스스로 군공항과 민간공항이 함께 이전할 적지를 정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통 큰 합의'를 고대해 왔다. 다른 지역이 부러워하는 TK의 단합력이 또 한 번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최종 합의에는 실패한 채 예비이전후보지 2곳을 모두 이전후보지로 격상하자는 급조된 결론만 냈다. 회의 직후 4명의 지자체장들은 이전후보지를 정했으니 앞으로 국방부의 이전 절차가 앞당겨질 수 있어 시간을 많이 벌었다며 손을 맞잡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완벽한 실패다.
이후 관계자들이 전해준 얘기는 기가 막힐 정도다. 4개 지자체는 애초부터 한곳으로 뜻을 모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종합된다. 실무진이건, 지자체장이건, 그들이 만났던 회의장은 불신의 공기로 꽉 차 있었던 듯하다. 서로 믿지 못하는데 합의안이 나올 리가 없다. 차라리 제3자인 국방부가 정하는 것이 지역 갈등을 없앨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대구시청에서 열렸던 두 번째 4개 지자체장 간담회 때 있었던 일이란다. A지자체장이 회의 모두에 "지역 소이기주의나 사사로운 정치적 이해관계에도 휘둘리지 말자. 오로지 대구경북의 미래만 보고 협상에 나서라는 것이 지역민의 민심"이라고 말하자, B지자체장이 "대구경북은 잘 모르겠다. 오로지 우리 지역만 생각할 뿐"이라고 맞받았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의 4개 지자체 입장을 각각 한 글자로 표현해보면 '반대', '냉무(내용 없음)', '안달', '무관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도 했다.
대구경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 지역은 예로부터 '한 뿌리'라는 의식이 굳건했던 곳이다. 지난 2014년에는 '대구경북한뿌리상생위원회'를 만들어 양 지역의 공동과제를 발굴'점검하며 공동보조의 손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통합 대구공항 이전후보지 선정을 두고 벌인 불협화음이나 수년간 낙동강 취수원 이전을 둘러싼 대구시'구미시 갈등을 놓고 보면 전혀 한 뿌리라고는 볼 수 없는 장면만 거듭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의 지자체장들은 '대구경북이 한 뿌리 상생을 통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자'며 공염불로 일관하지 말고, 지역의 현안에 대해 무엇이 대구경북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했으면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갈 길이 먼 통합 대구공항 이전사업과 난제 중 난제며 지역 갈등의 대표적 사례인 대구취수원 문제 해결 방안을 대구경북 한 뿌리 상생 협치의 모델로 도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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