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둥과 연기가 치솟더니 창문 틈으로는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쏟아지고…. 아비규환이었어요."
26일 낮 12시쯤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일대 골목에는 이날 오전 발생한 화재의 상흔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매캐한 탄내가 감도는 골목에는 소방차와 경찰차가 길게 늘어섰다. 소방관들은 그을리고 지친 얼굴로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추가 피해가 없는지 확인했다. 현장 감식을 나온 경찰 과학수사대는 황급히 병원 입구로 뛰어들어갔다. 밀양시가 현장 한쪽에 설치한 상황실에는 자원봉사를 나온 시민들이 분주하게 오갔고, 일부 유가족들은 한참 사망자 명단을 바라보다 결국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응급실 입구는 대부분이 검게 그을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곳곳이 깨진 창문 틈에는 화재 당시를 증언하듯 손자국이 남았고 연기가 새어나온 흔적들도 눈에 띄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구조물 틈으로는 '응급실'이라고 쓴 팻말이 검게 그을린 채 아직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는 타다 남은 재가 무질서하게 흩날렸다. 길게 쳐진 폴리스라인 뒤로는 시민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병원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종병원 바로 뒤편에 산다는 정삼화(82) 씨는 '아비규환'이라는 한마디로 화재 당시 상황을 표현했다. 정 씨는 "오전 7시쯤 집에서 나오니 세종병원에서 큰 불기둥이 타오르며 새까만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창문에서는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들렸다"면서 "병원 식당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새카매진 모습으로 덜덜 떨며 우리 집으로 도망왔는데 너무 놀라 정신을 놓을 뻔했다"고 말했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생존자들은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황망한 표정으로 뉴스 속보를 들여다봤다. 고령 환자가 많았던 데다 워낙 충격이 커서 화재 당시를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5층 병실에 입원했던 류영금(66) 씨는 "연기를 많이 마셔 기침을 할 때마다 검은 재가 묻어나오지만 목숨을 구해 천만다행"이라며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타는 냄새가 나 화재임을 직감했다. 5층에서 뛰어내리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뛰어내리려다 다행히 불길이 잡혀 탈출에 성공했다"고 했다.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온 2층에 입원해 있었던 김순남(69) 씨는 "아침을 먹으려다 갑자기 간호사가 나오라며 소리쳐 뛰어나갔다. 계단에 유독가스가 퍼져 다시 병실로 도망쳤는데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면서 "119가 창문을 깨줘 겨우 구조됐지만 먼저 계단으로 대피했던 사람들은 모두 숨졌다. 함께 화투도 치고 가깝게 지내던 언니도, 나를 살갑게 돌봐주던 간호사도…"라며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탈출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정말순(88) 씨는 코와 입을 막았던 새까매진 수건을 보여주며 연신 "이게 날 살렸다"고 말했다. 정 씨의 외동딸 박정자(54)씨는 "출근해 무심코 텔레비전을 보니 세종병원에서 불이 났다고 해 하늘이 내려앉는 기분으로 밀양까지 뛰어와 한참 엄마를 찾았다. '정말술'이라는 이름의 환자가 있어 '우리 엄마는 정말순인데' 하며 갔더니 엄마가 맞았고 큰 부상이 없어 눈물이 났다"고 했다. 박 씨는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신 "엄마 이제 괜찮다"고 다행스러운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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