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키나와(沖繩)를 간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되 오키나와는 연일 한국인으로 북적댄다. 몇 년 전까지 찾아볼 수 없던 광경이다. 직항기가 드물었던 시절에는 후쿠오카나 오사카를 경유해 네다섯 시간씩 걸렸다. 이제는 대구나 부산에서 마음대로 골라 잡아 탈 수 있다. 1시간 40분이면 도착한다.
◆일본 최남단 외딴섬 오키나와
규슈 최남단으로부터 약 690㎞ 떨어져 있다. 제주도 크기의 3분의 2 남짓이다. 인구가 150만 명에 달한다. 65만 명 정도인 제주도의 2배가 넘는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지만 오키나와에는 우뚝 솟은 산은 없고 대체로 완만하다. 남부 북부 어느 지역이나 부드럽다. 남성적인 제주도에 비해서 오키나와는 여성적이다. 어느 쪽이나 차로 1시간만 나가면 태평양을 만난다. 바다는 거칠어 보이지 않는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이라기보다는 완만한 해변들이 이어져 있다. 자전거로 달리다 어디든지 잠시 멈추고 셔터만 누르면 그림이 된다.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월 중순 한국은 시베리아 최강 한파가 몰아쳐 영하 15℃에 달한다고 하지만 오키나와는 영상 15~18도 전후에 이른다. 반소매 차림도 만날 수 있다. 1월 하순이면 피기 시작하는 꽃들도 있다. 해양스포츠와 휴식을 취하기에 딱 좋다. 겨울이면 일본 전역에서 골프를 즐기기 위해서 몰려드는 통에 골프장의 콧대가 높다.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고급 리조트들도 잘 구비되어 있다. 여행의 반은 날씨다. 특히 자전거 여행의 70%는 날씨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해양성 기후라 그런지 라이딩 기간 중 자주 비가 내렸다. 스콜성 비다. 늦은 점심을 하고 후쿠기가로수길(フクギ並木通り)을 가기 위해 식당을 나서는데 비가 내리쏟는다. 암담하다. 그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다른 이들은 전부 차로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부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괜스레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했다. 빗속을 달린다. 오락가락했던 빗방울이 맺혔던 오키나와의 하늘은 라이딩 내내 원망스러웠다.
◆상처가 많은 이야기를 지닌 오키나와
오키나와는 홋카이도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일본 민족이 아니다. '류큐'(琉球)라는 왕조 시대가 이어져 오다가 17세기 무렵 일본과 통합되었다.
류큐왕조(琉球王朝)에 대한 역사유적들은 류큐무라(琉球村) 등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다. 전통적인 오키나와 사람들은 조금 왜소한 듯하지만 다들 친절하다.
제2차대전 중 유일하게 미군과 지상전이 벌어져 많은 인명 피해를 본 섬이다. 그 이후에도 미국과 밀접한 인연을 맺어오다가 지난 1972년 일본으로 완전히 합쳐졌다. 요즘처럼 남북관계가 어수선할 때면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서 이착륙하는 비행편대 소식을 자주 접한다. 북부 지역으로 가면 주둔 미군기지도 만난다. 중부 지역에는 아메리칸 빌리지(AMERICAN VILLAGE)라 하여 미국을 본뜬 대형거리도 조성되어 있다.
오키나와는 남부(나하-那覇) 중부(자탄-北谷, 온나-恩納) 북부(나고-名護, 해도미사키-邊戶岬)로 크게 나뉜다. 남쪽에서 최북단 해도미사키까지는 약 130㎞다. 공항이 속해 있는 남부 나하시는 국제거리를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고 늘 인파로 북적댄다. 북부지역도 인적이 드물지만 유명 관광지들이 많아서 크고 작은 상가들이나 편의 시설들이 잘 되어 있다. 걱정할 만큼은 전혀 아니다. 최북단 해도곶(해도미사키)까지 가는 길도 시원스레 뻗어 있다.
오키나와는 교통이 불편하다. 트램이 움직이는 나하시를 제외하면 대중교통 버스는 30분이나 1시간에 한 대씩 다닌다. 그마저도 일찍 끊어진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도 적어서 'すみません'(미안합니다) 하고 머리를 긁적이면 자전거도 실어준다. 물론 앞뒤 바퀴는 빼야 한다. 이동 중에는 대중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다녔는데 운전기사나 승객 누구 하나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오키나와 라이딩 코스 한눈에 보기
라이딩 코스는 크게 세 곳으로 나뉜다. 최북단 해도곶을 가보자고 하는 탐험욕이 풍부하다면 네 곳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오키나와의 라이딩 순서나 코스는 딱히 정해진 것도 정형화된 것도 없다. 페달을 밟는 대로 달리면 그뿐이지만 그 나름 볼거리와 잠자리, 경치, 동선 등을 고려해보면 대략 크게 네 곳으로 나눌 수 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소견일 뿐이다.
▷코스-1: 나하시, 남부 일주 48~60㎞
오키나와는 나하공항에서 시작한다. 공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시작하여 다시 나하시로 돌아오든지 아니면 기노완시(宜野灣市)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남부지역의 아름다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코스-2: 차탄, 우루마(うるま), 오키나와시, 온나시 중부 일주 60~80㎞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시작하여 이케이섬(伊計島)까지 다녀와서 만좌모(万座毛)가 있는 온나시까지 올라갈 수 있다. 다소 업다운도 심하고 지겹다.
▷코스-3: 온나, 나고시, 해양도로 일주 70~90㎞
오키나와 라이딩의 백미다. 바다를 좌측에 두고 천천히 달리면 모든 근심이 싹 사라진다. 나고 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하는 해양 일주도로는 멋진 경치와 유명 관광지를 접할 수 있다. 이틀에 나누어 타는 것이 좋다.
▷코스-4: 나고시에서 해도곶 110㎞
해도곶은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다녀올 수 있다. 전용 자전거도로도 잘 되어 있고 안내도 충분하다.
◆자전거 여행의 출발점, 나하공항
비행기에 자전거를 싣는 일은 늘 신경이 곤두선다. 혹시나 항공사 규정에 어긋난다고 시비나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전문 자전거 캐리어에 앞뒤 바퀴 분리하고 포장해 수하물로 보냈더니 방송으로 호출한다. 바퀴의 바람을 빼라고 한다. 1시간 40분 날아가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도착한다. 기다리는 단체버스나 렌트카로 공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부럽게 쳐다본다.
자전거는 지금부터 땀을 빼는 시간이다. 공항 한쪽 모퉁이에서 자전거를 조립한다.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간혹 바퀴 이음을 허술하게 해서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자전거 캐리어를 맡길 곳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나하공항에는 대형 코인 라커룸이 있다. 하루 600엔 정도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찬바람임에도 뒷목에 땀이 흥건하다.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서 오키나와 지도를 구했다. 자전거로 섬 전체를 라이딩할 예정이라니 담당 직원이 엄지를 올리면서 'すごい~'(대단해요)를 외친다. 괜히 우쭐해진다.
왼쪽은 나하 시내, 오른쪽은 남부 일주 방향이다. 오른쪽으로 페달을 밟으며 공항을 빠져나온다. 그렇다. 이제부터 설렘 속에 본격적인 4박 5일간 오키나와섬 자전거 투어가 시작된다.
일요일에는 168㎞를 달리는 '츄라우미센추리런 2018'(美ら島沖縄センチュリーラン) 대회에도 참가한다.
Tips
*항공편: 대구→오키나와 TW(티웨이) 주 4회
부산→오키나와 TW(티웨이) BX(부산에어) OZ(아시아나)
*비행기에 자전거 싣기: 전문 캐리어나 별도 박스 포장을 해야 한다. 앞뒤 바퀴를 빼거나 때론 핸들을 분리해야 할 수도 있다. 삼면합이 203㎝ 이내, 15㎞까지는 허용된다. 자전거 수하물 비용 1만원(편도)이 추가로 든다. 기압 때문에 바퀴 바람을 살짝 빼야 한다.
*자전거 포장박스나 캐리어 보관: 공항 내 JTB 여행사 수하물 보관소나 대형 코인 라커룸이 있다. 일일 600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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