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자식들이 모이는 날이면 떡을 준비한다. 고물이 들어간 떡은 쉬이 상할 수 있어 보관이 용이치 않다며 꼭 가래떡을 뽑아서 자식들에게 나눠 준다.
얼마 전 작은오빠네 집들이 모임에도 어김없이 떡상자가 자리했다. 요즘 배곯는 자식은 없다. 그러나 어머니 입장에선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음식으로 떡만큼 푸짐한 것도 없었으리라. 시골에서 뽑아온 두어 말가량의 가래떡이 썰기 좋을 정도로 알맞게 꾸덕하다. 연로하신 어머니와 칠순을 바라보는 큰언니가 그 많은 떡을 썬다.
예전에는 설에만 가래떡을 뽑았다. 가래떡을 미리 해서 썰어두어야 일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세시(歲時)가 다가오기 며칠 전부터 바빴다.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퍼서 두어 말씩이나 되는 쌀을 씻어 불렸다. 불린 쌀은 조리로 일어야 하는데 쌀에 뉘와 돌은 또 왜 그리 많았는지.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이라 어머니 손은 벌겋게 얼었고, 튼 손에서 핏물이 비치기도 했다.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쌀은 함지박에 담아 아버지는 지게에,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윗마을 방앗간을 찾았다. 이날만큼은 촐랑거리며 따라나서는 막내딸을 내치지 않았다. 아마도 떡쌀을 지키고 있으라는 무언의 암시였는지 모르겠다. 이른 아침인데도 쌀을 담은 그릇들의 행렬은 길었다.
방앗간에서는 장작을 지펴 떡을 쪘다. 구수하게 익어가는 떡 냄새가 온 동네 아이들을 모여들게 했다. 수증기가 하얗게 품어져 나오는 떡방앗간에 제비 새끼처럼 조잘거리며 모여든 아이들로 인해 왁자한 놀이마당이 펼쳐졌다. 술래잡기며, 숨바꼭질이며, 남자 아이들이 하는 자치기 놀이에까지 끼어들었다가도 우리 떡쌀 보퉁이는 잘 있는지 한 번씩 둘러보곤 했다.
찜통에서 잘 쪄진 쌀은 떡기계로 쓸려 들어가 기다란 가래떡으로 변했다. 물이 철철 넘치는 함지박으로 하얀 가래떡이 줄줄줄 나왔다. 방앗간 집 아주머니의 손도 보통 재바른 게 아니었다. 여러 가닥으로 나오는 떡을 가위로 잘라 길이를 맞추었다.
아침에 맡긴 떡쌀은 오후 중참이 지나서야 떡으로 환생했다. 얼마나 귀했던 떡인가. 축축 늘어지는 가래떡을 할머니가 고아놓은 수수 조청, 고구마 조청에 찍어 목을 한껏 젖혀가며 먹었다. 어른들은 홍시에 떡을 찍어 드신다지만 어찌 차진 조청에 비할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지나 꾸덕해진 떡을 써는 어머니 곁에서 동전 모양의 떡을 구워먹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화롯불에 달궈진 인두에 떡을 올려놓고 잠시 기다리면 떡은 봉긋 부풀어 올랐다. 나무 기둥처럼 쩍쩍 갈라진 마른 가래떡 동가리는 아버지가 사랑채 아궁이 숯불에 구워주었다. 시골 아이에게 이만한 주전부리가 있으랴. 요즘에야 때깔 좋고 맛 좋은 떡이 널려 있지만 예전엔 가래떡만 한 것이 없었다.
떡국은 설날에만 먹는 특별식이었다. 요즘에야 수시로 떡국을 먹으니 귀한 음식도 특별식도 아니지만, 그래도 세시에 먹는 떡국은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설날에 먹는 떡국은 천지 만물이 시작하는 새날의 음식이다. 흰떡은 백의민족의 깨끗함을 표상하고, 둥근 모양으로 길게 늘여놓은 가래떡은 장수를 바라는 소망을 품었다. 떡국의 둥근 모양은 엽전과 비슷하여 물질적 풍요로움을 바랐다고 하니 새해에 먹는 음식으로 이보다 복된 음식은 없을 것이다.
유년의 기억엔 젊은 모습의 어머니가 있다. 가래떡같이 긴 시간을 더듬으며 떡국을 끓인다.
Tip
떡국에 사용하는 육수는 식성에 따라 선택한다. 꿩 육수가 좋다 하지만 사골 우린 국물도 좋고, 멸치를 우려서 사용해도 무난하다. 집집마다 떡국을 끓이는 방식이나 고명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계란 황백 지단과 소고기를 다져 고명으로 얹고 김가루를 얹는다. 기호에 따라 만두, 두부, 파를 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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