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세간의 이목이 온통 강원도와 동해안으로 집중되고 있다. 북한팀 선수단 및 삼지연관현악단의 참가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평창올림픽은 물론 강릉, 정선, 동해안 지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동계올림픽을 맞아 서울~강릉 경강선 KTX가 개통되면서 수도권 사람들에게 강원도는 더욱 핫한 여행지가 됐다. 4, 5시간이 걸리던 이동거리가 2시간으로 단축됐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포항'영덕은 흔히 찾는 동해안 나들이 장소이지만, 사실 더 북쪽 해안까지 올라가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워낙 이동거리가 먼데다 길도 만만찮다. 잘 뚫린 동해안 고속도로가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지역을 여행하는 이유는 바로 7번 국도를 따라 인접한 바닷가 마을들을 느껴보는 데 있다. 그러니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보다는 굳이 운전이 불편한 국도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큰마음 먹고 길을 나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여행이 된다. 동해는 북쪽으로 갈수록 더 짙푸른 바다색과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진 최고의 해안 풍광을 자랑한다. 잠시도 눈이 쉴 틈 없을 정도다. 차근차근 명소를 다 챙겨볼 생각이라면 2박3일의 일정도 모자란다. 7번 국도를 타고 최북단 통일전망대까지 1천㎞ 드라이브를 떠나 보자.
◆7번 국도를 타고 겨울 바다와 만나다
낯섦이 주는 흥분 때문일까. 늘 보던 동해바다지만 보다 역동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뾰족하게 솟아 차가운 겨울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기암절벽도, 우레 같은 소리를 내뿜으며 하얗게 부서지는 날카로운 파도도 서릿발처럼 차가운 겨울 감성을 더한다.
겨울 바다는 늘 '쉼표'로 기억된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과는 달리, 파도 소리만이 요란한 인적 드문 겨울 바다는 철썩철썩 마음에 끼어 있는 먼지를 닦아내 주는 것 같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뭐에 그리 연연했나' 하는 마음에 일었던 삭풍도 희미해져 간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강릉 정동진. 전국 제일 해돋이 명소인 이곳은 1994년 방송된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세를 탄 뒤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여행지다. 바다와 바로 인접한 기차역이 여행의 낭만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들어선 드넓은 정동진모래시계공원에는 시간박물관과 대형 모래시계가 볼거리다. 모래시계는 지름 8m의 크기로 세계 최대 규모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정동진시간박물관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특별전을 3월 31일까지 진행한다.
특별전에서는 스미소니언 박람회에서 미국 국가대상을 수상한 제임스 보든의 갈매기의 꿈, 세계 시계명장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고든 브라듯의 그랜드파더 세븐맨 클락, 캐나다 출신 유명 아티스트 로저 우드의 아스트로로지컬 스팀펑크 클락 등이 전시된다.
연말과 새해, 그리고 설날 등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올 한 해 목표를 다시 챙겨보면 좋다.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과는 천차만별이 된다.
◇'커피 거리'로 유명해진 안목해변, 특색 있는 커피 즐기며 해변 산책
◆도깨비 촬영지와 안목해변
강릉 해변을 따라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주문진항에 도착하기 전,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가 나온다.
메밀밭을 거닐고 있던 공유(김신)가 방파제에 울먹이며 주저앉아 케이크 촛불을 끄던 김고은(지은탁)에게 소환되어 와 운명적 첫 만남을 가진 곳이 바로 주문진의 작은 방파제다. 내비게이션에도 '도깨비 촬영지'라고 되어 있으며, 심지어 버스정류장 이름도 '도깨비 촬영지'라고 되어 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셀카봉을 들고 인증샷을 남기기에 바쁘다.
이곳에는 작은 방파제 4개가 줄지어 있는데 그중 테트라포드(방파제에 사용되는 네 개 뿔 모양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되어 있지 않은 오른쪽 2개 방파제에 인파가 많이 몰린다. 멀리 등대 3개가 카메라 화각 안에 들어온다.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갑자기 너울성 파도가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
찬바람에 몸을 녹일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난다면 안목해변으로 가보자.
바다 내음이 아닌 코끝을 스치는 커피 향과 함께 해변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강릉=커피'라는 공식을 만들어낸 곳이 바로 여기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다양한 아이디어로 구워낸 빵들을 판매하는 특색 있는 카페가 즐비하다. 물론, 워낙 찾는 이들이 많아 약간의 교통체증은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안목해변이 유명해진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이다. 사실 이곳은 원래 커피자판기가 많던 곳이었다. 주머니 사정 열악한 젊은 연인들이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들고 해변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각광받았다. 입소문을 타면서 한때는 500m의 짧은 거리에 80대가 넘는 커피자판기가 우후죽순 들어서기도 했다.
이후 언제부턴가 테이크아웃 커피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카페가 생기고, 특색 있는 맛과 인테리어를 내세운 카페들이 줄지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아예 '커피 거리'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다. 매년 가을이면 커피축제도 열린다.
◇동해안 가장 북쪽 '통일전망대', 화진포 김일성 별장 풍광에 취해
다음 날은 아침 일찍부터 동해안을 따라 끝까지 내달려 통일전망대에 닿았다. 고성군 간성읍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는 동해안을 따라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북쪽이다.
이곳에서는 북녘의 금강산과 해금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 오른편 가장 끄트머리에 보이는 봉우리가 금강산 일만이천봉 가운데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 오른편으로는 '바다 위 금강산'이라 불리는 바위섬들이 파도와 싸우고 있다. 해변을 따라 뻗어 있는 7번 국도와 철로도 눈에 들어온다.
길은 분명 통일전망대 너머 북한 땅까지 이어져 있지만 갈 수 없는 땅이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녘 땅에는 인적조차 찾을 수 없다. 스산한 겨울 풍경이 '분단'이라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과 어우러져 더욱 가슴 시리고 아련한 곳이다.
통일전망대 인근에는 강원도가 운영하는 DMZ(비무장지대)박물관이 있다. 2009년 8월 개관한 DMZ박물관은 고고역사, 전쟁군사, 자연생태, 생활문화 관련 6천2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발길을 다시 돌려 남쪽으로 5분 남짓 내려오면 둘레가 16㎞에 이르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 호수 화진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울창한 송림과 호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다. 금강산 구경 길에 올랐던 방랑시인 김삿갓이 이곳의 풍광에 취해 '화진포팔경'을 읊었으며, 이승만 이기붕 김일성 등 과거 남북 권력자들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니 당연히 최고의 절경을 인정받은 곳이다.
그중 압권은 바닷가 쪽 야산에 위치한 김일성 별장이다. 화진포는 38선 이북 지역이기 때문에 6'25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는데, 1948년 8월 김일성 일가족이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원래는 1938년 건축된 캐나다 선교사 셔우드 홀이 살던 건물로 마치 독일의 성과 같은 외관을 지녔다고 해서 '화진포의 성'으로도 불린다. 김일성 별장에서 내려다보면 화진포의 해안선과 짙푸른 동해바다의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아바이순대'새우튀김 즐기고 한계령에서 겨울 설악 느끼기
강원도의 동해안은 수많은 볼거리가 있어 사실 취사선택이 어렵다. 곳곳이 비경을 품고 있다. 일정을 잘 잡아 차근차근 움직여야 한다.
속초는 바닷가 풍광도 좋지만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미식 여행지로도 유명하다. 그중 첫손에 꼽히는 것이 아바이순대다. 아바이순대로 유명한 '아바이마을'은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보니 6'25전쟁 당시 북한에 살던 피란민들이 많이 정착하면서 형성됐다. 함경도 음식인 아바이순대는 돼지의 대창 속에 익힌 찹쌀밥, 선지, 여러 가지 부재료 등의 소를 넣고 쪄낸 것으로, 일반적인 순대보다 두툼하고 속이 푸짐하다. 속초시 청호동 설악대교와 금강대교 사이에 자리 잡은 아바이마을에서는 순대와 함께 강원도 별미인 오징어순대를 맛볼 수 있다. 속이 꽉 찬 오징어순대를 썰어 다시 한 번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부쳐주기 때문에 고소함이 배가 된다. 특히 속초식 명태회 무침을 곁들여 먹으면 달콤매콤 어우러져 더욱 좋다.
인근 대포항은 '새우튀김'으로 유명하다. 포구를 따라 난전에 늘어섰던 새우튀김점들이 '원조튀김골목'이라는 간판을 달고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입맛에 따라 새우 속살만 튀긴 것과, 껍질째 튀긴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다.
강원도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가던 길과 마찬가지로 동해안 고속도로와 7번 국도, 그리고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거쳐 돌아오는 방법이 있고,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어 중부내륙으로 난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 오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어느 쪽 길을 택하든 만만찮은 장거리 운전이다.
기왕 사서 하는 고생, 색다른 풍경을 통해 눈이라도 즐겁자는 생각에 한계령 옛길로 접어들었다. 먼먼 강원도 땅을 밟은 만큼 한계령을 통해 겨울 설악산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었다. 한계령은 영동과 영서, 내설악과 남설악의 분기점이다. 구절양장처럼 굽이치는 산길을 타고 오르며 하얗게 눈 쌓인 계곡의 모습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해발 1,004m의 한계령휴게소에 닿았다. 하늘을 찌를 듯 삐죽빼죽 뻗은 독특한 형태의 설악산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차 한잔을 즐기는 여유가 바로 겨울 설악산의 맛이다. 운전은 조금 피곤하지만 제대로 눈 호강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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