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하빈의 시와 함께] 양파

# 양파

안명옥(1964~ )

여자만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양파 몸을 벗길 때마다

양파는 나 대신 운다

미끌미끌한 것은 양파의 유머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양파의 자유다

양파는 칼날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수많은 실핏줄을 감추고

몸 속 깊이 자궁을 숨기며

파란 싹을 피워내고 있다

양파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해맑은 표정 속

매운 향기가 쟁여있다

연애 한번 하자고 옷을 벗기다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당신은 자꾸 울었다

―시집 『뜨거운 자작나무 숲』 (리토피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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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가 운다고? 벗길 때마다, 나 대신 운다고? 여자만(汝自灣)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당신과 내가 속 깊은 사랑을 나눈다. 마치 바다가 육지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듯이. 수많은 상처를 감추고 남자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여자, 몸속 깊이 자궁을 숨기며 파란 싹을 피워내는 여자는 오랫동안 갈구했으나 하 수상한 시절 탓에 당신과의 사랑을 온전히 나누지 못한 나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다.

그러니 어쩌랴! 매운 향기가 내 몸속에 쟁여있으니 사랑을 나누는 당신도 나도 울 수밖에.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울면서 밤도와 사랑을 피웠으리라. 이처럼 사랑은, 서로가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랑마저도 해맑은 웃음만이 아니라 쾌락의 자유만이 아니라 결국 깊은 속울음을 남긴다는 것! 그렇거나 말거나 오늘 밤 깊은 사랑으로 여자만이 울음바다를 이뤘으면 좋겠다. 젖은 당신과 내가 '뜨거운 자작나무 숲'처럼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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